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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Mar 21. 2024

TTA : Time-to-action

나는 게으르다. 나는 나를 그렇게 표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부지런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은 조금 더 게으르다. 모든 사람에게는 동일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부지런한 사람이 10가지 일을 하는 동안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들은 축 늘어진 시계처럼 더디게 움직인다. 나는 시간을 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시간을 어떻게 더 잘 써야 하나 고민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으른 사람은 필연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스럽다.


나는 시간에 대해 엄격한 집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잠시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았는데, 할머니 집은 주변에 천이 있고 뒤에 산이 있는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해야 할 숙제도 없었고, 가야 할 학교도 없었다. 내가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나가서 곤충들을 관찰하고 산을 탐험하는 것이었다. 부지런한지 게으른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던 시기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학교가 끝나고 나면 매일 학원을 가야 했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게으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에 맞춰 사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많이 혼났기 때문이다.


30살이 넘고 회사에서 회사원이 되었을 때에도 나의 게으름은 철없이 지속되었다.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약속에 제시간에 가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해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당황스러워했다. 심지어 세차 예약을 하고 늦어서 차를 몰고 갔는데 세차를 거절당하는 상황도 생겼다. 이와 반대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일에 집중하는 습관도 생겨났다. 평소에 하고자 하는 일이나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 번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무섭게 집중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기본적으로 게으르지만 그 안에 일에 대한 집착이 섞여있달까.


주위를 둘러보면 나 이외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게으름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해야 할 때 하지 못하고, 그만둬야 할 때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일관성이 결여된 생활 습관은 독처럼 삶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대로 놔두었다간 내 삶 전체가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로 나타나는 여러 상황들이 주의를 주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비바람이 폭풍우가 되어서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천성이 게으르다면 이것을 고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현재 상황을 인지하는 법을 배운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 상황을 인지하기 위해서 TTA(time-to-action)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냈다. 문제의 정의는 이렇다. 사람의 자아는 계획하는 자아와 행동하는 자아로 분리할 수 있다. 계획하는 자아는 무엇을 해야 할지 혹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하는 자아에게 전달한다. 행동하는 자아는 계획하는 자아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달받고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나의 경우 계획하는 자아가 행동하는 자아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달하는 순간, 행동하는 자아가 반항한다. 계획하는 자아가 ‘밥을 먹어야 해!’라고 행동하는 자아에게 전달하면, 나는 밥을 먹지 않고 청소를 갑자기 시작하는 식이다.


행동하는 자아는 이 패턴을 지칠 때까지 혹은 정말 문제가 생길 때까지 지속한다. 그때서야 행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최초에 계획을 했을 때와 행동을 시작할 때 사이의 시간 간극이 생긴다. 이 시간 간극을 TTA라고 부르기로 했다. 심리학에서는 관련해서 착수지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TTA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나의 TTA는 길었다. TTA가 길면 생기는 문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다. 따라서 나는 하루종일 약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게으른 삶보다는 부지런한 삶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그렇지는 않고 게으른 것이 나의 삶을 망치지 않는 이상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현재가 다른 것이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2)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거나이다. 나는 둘 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관찰하면서 1번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대부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살면서 해야 하는 것은 많다. 그렇기 때문에 2번이 결국에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제로 행동함으로써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 괴로움이 줄어든다면 게으름은 더 이상 내 삶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 TTA라는 개념을 만들고 스스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TTA라고 이름 붙이고 그것을 줄이려고 생각하는 순간 추가적인 괴로움이 생긴다. 내가 잘 안 변하기 때문이다. TTA가 줄어들어야 전반적으로 희망적인 미래가 그려지는데 변하고자 노력하는데 안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비관적이 되기 마련이다. 그조차 수용해야 한다. 변하고자 노력하는데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변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더 큰 괴로움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고 사는 것보다 나는 이런 삶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너스로 주어진 괴로움도 수용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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