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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Mar 20. 2024

어쩌다 커피를 좋아해서

어쩌다 커피를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와 빵을 먹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한 것 같지 않다.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을 차분히 하고 여유를 부리다 보면 어떤 일이 다가와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믹스커피만 마시던 때, 처음으로 카페에 간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남자끼리 카페에 가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카페는 주로 여성들이나 커플이 가는 장소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나는 여자친구 없이도 카페에 가고 싶었고, 그래서 남들 눈치 보면서 조심스레 카페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첫맛은 별로 좋지 않았다. 원래 내가 알던 커피는 달달한 맛이 나야 하는데, 아메리카노는 쓴 맛이 났기 때문이다.


쓴 맛. 이 표현은 때로는 삶을 표현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쓰디쓴 인생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쓰다’는 말은 종종 우리에게 고통을 상기시킨다. 눈앞에 마주한 이 사약 같은 액체를 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에 소주를 마시면서 같은 충격을 받는다. 이걸 왜 마셔?) 그래서 주로 카페에서는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또를 마셨다. 나에게는 여전히 달달한 맛이 나는 것이 커피였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동네에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가 생겼다. 그때는 이미 소주를 경험한 뒤라서 아메리카노쯤이야 쓰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는 지나가다 괜찮은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괜찮은 카페를 찾으면 사람이 없는 일요일 오전 같을 때 한산한 카페 분위기를 즐겼다. 그렇게 드립 커피 카페를 방문해 보고, 처음으로 드립 커피를 마셔봤다. 아메리카노에 비해 진한 맛이 (쓴 맛은 더 진했다) 나는데 묘하게 여러 향이 난다는 것을 느꼈다. 쓴 맛이 나는 것은 똑같은데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그렇게 카페를 종종 방문했다. 여러 번 방문하고 나니 이런저런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카페 사장님과 친해져서 갈 때마다 원두를 추천받아서 마시곤 했다.


사실, 드립 커피의 매력은 커피 자체도 있지만 커피 잔에 담아준다는 것에도 있었다. 예쁜 커피 잔을 보고 있으면 커피를 한 번에 다 마시면 싶지 않아진다. 위스키 잔에 담긴 위스키를 한 번에 마시지 않는 것이랑 비슷하달까? 그래서 커피를 천천히 마실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곤 했는데, 커피의 깊은 맛과 함께 책이라는 세상으로 깊게 내려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책과 커피의 조합은 즐거운 하루의 시작으로 기억되었다.


이후에 캡슐 커피, 에스프레소 등 다양한 커피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 원래는 산미가 없는 과테말라 같은 원두를 좋아했지만 요즘에는 에티오피아 원두에 푹 빠져서 산다. 하지만 슬프게도 소화가 잘 안 되는 몸이라서 빈 속에 커피를 마시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사는 시간이 젊은 날 잠깐이라는 사실이 슬프다. 그러면서도 인생은 앞으로도 이럴 것이라 생각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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