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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Mar 25. 2024

나는 쉬고 있는걸까

요즘 나의 하루는 단순하다.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루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일어나서 커피 머신에 원두를 넣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책을 읽고 싶다고 하면, 책장으로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읽기 싫어질 때까지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속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분주하다.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지만, 알고 보니 공회전을 하고 있는 나의 차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나의 공회전은 조급함으로부터 생겨나는 것 같다. 어떻게 쉬게 된 것인데 좀 더 제대로 쉬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고, 젊은 때는 지나가면 돌아가지 않는데 이때만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한다.


그냥 쉬면 되는 것일 텐데, 왜 이렇게 나의 머릿속은 어지러울까 생각하게 된다. 쉰다라는 단어가 어떤 압박감을 주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 의문을 품어보기도 한다. 혹시 이 단어가 문제일까?


쉰다라고 말하려면 쉬는 것과 쉬지 않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어떤 상태를 보고 어떨 때는 ‘쉬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모습을 관찰할 때는 ‘쉬지 않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나의 시간은 쉬는 것과 쉬지 않는 것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이다. 쉰다는 말 한마디로 이분법적으로 나의 시간을 나누게 되는 것일지는 몰랐다. 쉬는 것도 아니고 안 쉬는 것도 아닌 상태는 없을 것일까? 이런 생각할 때면 괜히 삐뚤어진 시각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주춤하기도 한다.


쉬는 것이 곧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쉬는 것은 돈이 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을 쓰고 있는 상태랄까. 돈을 버는 행위가 일하는 행위라면 일하지 않고 있을 때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쉴 때, 아무것도 안 하지 않고 여러 소비활동을 한다. 그래서 나는 쉴 때 통장 잔고를 조금씩 깎아먹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은 돈을 지불한 시간이다. 1주일을 쉬면 그동안 벌 수 있는 돈과 내가 숨 쉬면서 지출하는 돈을 합한 만큼의 돈을 지불한 것이다. 1 달이면, 1년이면… 엄청나게 큰 돈이다. 그래서 지불한 돈 대비해서 쉬는 시간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100만 원을 썼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쉬는 것의 목적이 단순히 쉬는 것이라면 돈의 관점에서 남는 것은 없다. 그렇게 되면 “투자”가 아니라 단지 “소비”가 된다. 그렇게 쉬는 것은 비싼 소비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에 넘치는 소비행위를 자랑하는 글들처럼 쉬는 것도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혹은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자기 자신을 회복하거나. 쉬는 것은 나라는 기계를 고치는 시간이거나 그 자체로 전시품이 되거나.


따라서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쉬는 것도 계획하게 된다. 실제로 계획 없이 쉬게 되면 실제로 시간이 별거 없이 잘 흘러간다. 하루 3끼 밥 해 먹고 지내다 보면, 1주일은 그냥 지나간다. 시간이 그냥 지나가다니! 돈보다 비싼 시간이! 그래서 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쉬는 것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쉬는 것 또한 업무처럼 우선순위와 계획, 실행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나는 별 계획이 없는데, 가끔 불안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스스로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얼마나 내가 스스로를 기계처럼 다뤄왔는가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순간을 나로서 살고 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던 다니지 않던, 일을 하던 일을 하지 않던, 돈을 벌던 벌지 않던, 그런 기준으로 시간을 구분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구분하고 산다고 해도 죽을 때 후회가 없지는 않을테니. 하늘과 별과 바람이 내게 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시간은 시간으로 놔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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