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야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최근에 노토라는 앱을 출시했다.
작년 2월에 퇴사하고 1년 반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만든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결과는? 역시나 아무도 사용해주지 않는다. 예상했던 결과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쓰리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경험을 통해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은 그동안 깨달은 바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알려주려는 의도는 없다. 나 자신에게 이르는 말이다.
나의 MBTI는 ENFP이다. 상대방이 MBTI를 묻는 걸 은근 좋아한다. 듣는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는게 재밌기 때문이다. 특히 F인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나는 공감을 잘하는 편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집중을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그 마음을 느끼고 대화를 통해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려고 노력한다. 일할 때가 아니라면 말이다.
일할 때는 라이트 형제의 방식을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비행기를 처음으로 만든 이 위대한 형제는 매일 매일 치열하게 싸웠다.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이 되면 형제는 제 3의 안을 고안해서 실험했다. 솔직한 의견과 의견의 충돌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고 그게 위대한 제품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할 때는 솔직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솔직한 의견을 듣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의 의견을 말할 때도 서스럼없이 말했고, 피드백을 받는 것도 좋아했다. 상대방이 솔직한 의견을 말한다고 느껴지지 않으면 답답하곤 했다. 회사를 다닐 땐 말이다.
나만의 제품, 우리만의 제품을 만들고 나니 일과 나 자신을 분리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제품이 외면 받으면 내가 세상에서 외면 받는 것 같고, 제품이 부족하면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회사를 다닐 때는 '사실'을 토대로 의사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으면서 정작 내가 제품을 직접 만드니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지곤 했다. 특히나 아내와 함께 일하다보니 나의 이런 힘든 마음을 공감 받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현실이 아프니까.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나의 마음을 100% 공감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공감을 바라면 차라리 기도를 해야한다. 아내는 아내이기 이전에 이 제품을 함께 만드는 메이커다. 일할 때 아내와 함께 해야하는 대화는 공감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다. 공감을 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나아지지 않는 상황은 더 많은 공감이 필요하게 만든다. 그러다보면 일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 공감해주고 있어야 한다. 이러려고 창업했는가? 이러려고 앱을 만들기 시작했나? 답은 스스로 알고 있다.
나는 여전히 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다. 특히 마음의 문제는 무엇을 하나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을 다르다. 일을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일할 때 공감은 필요하지 않다. 아니, 필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담백하게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공감을 할 뿐이다.
아내와 창업을 하면 가장 어려운 게 뭘까? 경험해보니 알겠다. 일과 일상이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퇴근이 없다. 회사에서 동료와 부딪혀도 그곳을 벗어나서 돌아갈 집이 있다. 집에 돌아와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보면 충전도 되고 환기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우리에게 그런 구분은 없다.
우리에게는 사용자가 사용해주는 제품도 아직 없고 사무실도 없고 투자자도 없고 직원도 없다. 그러다보니 나는 내가 창업가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와 일 이야기를 할 때마다 회사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이야기 하듯이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이게 힘들어, 이게 스트레스 받아, 이것밖에 못했어..
만약 이게 아내의 일이 아니면 좀 더 우리의 대화를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 일에 대해 내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회사에 출근해서 회의에 참가했는데 팀장이 자신의 힘듬과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내가 팀장이라는 말은 아니다) 과연 나라고 하면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긍정적이고 발전적이며 현실적인 사람과 일하고 싶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 무엇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아는 사람. 그리고 그걸 실천하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
나는 창업해놓고 이 회사를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일 이야기가 나오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회사다. 아내와 이야기한다고 아기처럼 굴면 나는 창업가가 아닌 것이다. 스스로 세상에 임팩트를 끼치고 싶고 나로부터 시작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면 창업가다. 창업가라면 할 일을 하면 된다. 성공한 창업가들이 회사를 차리고 직원이 생기고 제품이 알려졌을 때부터 창업가였을까? 그렇지 않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고 리스크를 짊어지며 시작했을 때부터 창업은 시작된 것이다.
창업을 하면 일이 삶을 지배하게 된다. 주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삶을 제물로 바쳐야 성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거짓말이다. 일은 삶의 일부이다. 만약 일만 생각하고 산다면 시야가 좁은 것이며 그릇이 작은 것이다.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건 모두가 알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잃기 마련이다. 어른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 때 무엇을 포기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창업가로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것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창업가도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없이 어떤 창업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삶을 놓칠 수 밖에 없다. 창업을 하고 있지만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어제보다 오늘 나는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요즘 삶은 두려움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인류는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왔다. 두려움은 생존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두려움이 없다면 아무도 없는 밤에 홀로 숲에 나가서 맹수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옛날 우리 조상이 느꼈던 두려움이 지금도 우리 마음 속에 꽈리를 틀고 있다. 두렵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도 두려움이 고개를 들고 주저하게 만든다. 생존의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도 두려움의 지배를 받곤 한다.
나를 둘러싼 두려움은 하나가 아니다. 양파 껍질처럼 겹겹이 쌓여있다. 삶이 나에게 주어준 숙제는 그 양파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것이다. 두려움은 허상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삶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두려움을 진실을 가린다. 두려움을 인지하고 발을 내딛어보면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깨닫는다. 나는 성장했구나.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창업자로서 성장 못할리가 없다. 좋은 창업자가 되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야한다. 세상에 이로움을 주기 이전에 가정이 행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는 창업을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막무가내로 창업에 뛰어드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로또에 당첨되길 바라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경험하고 자본을 쌓고 인맥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배우고 나서 창업을 하면 성공 확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PM으로 일했기 때문에 제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스타트업에서 성장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지 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막상 실제로 창업을 하고 앱을 만들어보니 오히려 그 지식들과 경험이 도움이 안됐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채로웠고 변화가 빨랐다. 내가 배웠던 것은 이미 오래된 지식이 되어있거나 우리의 상황과 맞지 않았다. 나의 지식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방해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창업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많이 괴로웠다. 과거에 고생하며 배웠던 게 아무 쓸모도 없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창업을 위해 하나씩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쌓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드니 불안해졌다. 나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최근에 깨달은 것이 있다. 경험이 내 안에 지식으로서 혹은 스킬로서 남는 것이 아니다. 경험이 나를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만약 내가 스타트업에 가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PM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창업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창업을 하지 않았다면, 미래의 어떤 것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경험은 나를 미래로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건너가게 해주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새롭게 적응하고 해야할 일을 하면 된다.
창업은 이론의 영역이 아니다. 학자가 될 것인지 창업가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기존에 나는 창업을 학문처럼 대했다. 내가 배웠던 틀안에서 창업을 바라본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상황이 당황스럽고 또 자신을 질책하게 되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창업은 새로운 것이고 새로운 것에서 이전 것이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잘못된 것은 나의 인식이었다. 나는 창업가이다. 나의 경험들이 나를 창업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