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갖추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잖아
어제 기분 좋게 산책을 하고 돌아와 라면을 맛있게 끓여먹고 여유를 부리고 있으니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셨다. 라면 냄새가 진동하는 집 안을 보시고 안쓰러운 눈으로 보시는 엄마와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이야기하기 위해 따뜻한 홍차와 비스킷을 마시며. 주제는 층간소음이었다.
“엄마, 예전에 살던 집에서 옆집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아세요?”
엄마는 몰랐다고 하셨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 내 방이 옆 집과 붙어있었는데 그 붙어있는 방에서 자주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그 집의 엄마 분과 자녀 분이 싸우는 소리였던 것 같은데 건너편 방에 사는 나도 엄마 분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내가 다 컸을 때라 엄마가 나에게 소리칠 일이 없었긴 하지만 과거의 우리 모습과 너무도 유사했기 때문에 과거 생각이 안 날 수 없었다.
“그때, 왜 그렇게 우리에게 화를 내셨어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않았지만, 엄마의 대답은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엇나가지 않고 좋은 대학, 좋은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혼내고 등 떠밀어 학원에 보내고 바쁘게 살게 한 것이다. 모든 아들 딸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놀기를 좋아했고 더러는 사고를 치고 더러는 엄마 속을 썩였겠지. 그렇게 엄마 말을 안 듣는 순간들이 많았겠지 싶다. 그래서 엄마는 화가 났던 것 같다.
최근 나의 삶을 돌이켜보니 엄마가 등 떠밀어 학원에 보내던 그 아이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행복하기 위한 조건들만 쫒으면서 한 조건을 만족하면 다음 조건을 채우기 위해 쉴 새 없이 달렸다. 가끔 행복하고 자주 치열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 많은 세월 엄마가 우리에게 바랐던 삶은 조건을 채우다 사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세요?”
행복. 결국 엄마가 바랐던 삶은 행복한 삶이다. 엄마가 살아온 시대는 급변하는 시대였다. 가난과 여러 힘듬을 지나 온 엄마의 삶에서 행복에는 기본 조건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엄마가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자식들이 누리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오셨나 보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본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도 엄마의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불행할 수 있고, 아무리 출세해도 불행할 수 있고, 아무리 교양을 갖추어도 불행할 수 있다.
만약 조건에 따라 행복이 정해진다면 행복은 차별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은 평등하다고 믿는다. 편한 삶은 차별적이지만 행복한 삶은 누구나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위의 삶은 우리의 마음이 그려내는 것이 아닐까. 행복의 조건을 채우기 위해 달리는 과정에 있을 땐 행복에는 조건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아니 자연스럽게 행복할게요. 그러니 엄마도 행복하세요”
31살이 되어서야 엄마와 마음과 마음을 대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수많은 말을 건네었겠지만 서로에게 진짜 전하고 싶었던 말은 행복하라는 말이 아닐까.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에게 타인의 인정은 필요 없다. 이제는 조금은 다르게 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