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를 죽일 수도 있는 공허함

의미 있는 삶을 향하여

by 웅사이다

공허하고 허무한 이 감정을 내가 느낄 줄 몰랐다. BTS 정도로 성공한 사람들만 느끼는 감정일 줄 알았는데, 누구나 느낄 수 있다는 걸 요즘 깨달았다. 젊은 날 열심히 달리고 내가 목표로 삼았던 것들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어쩔 줄 몰라하는 나의 영혼을 느꼈다. 성장의 시대에 성장 뒤에 가려져있는 이 공허함은 누가 알아주고 누가 해결해주나 싶었다.


사실 이러한 미래가 언젠가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미리 책도 읽고 삶에 대해서 고민도 하고 해 볼 만한 건 다 해봤던 것 같다. 하지만 링 위에 올라가지 않고 쉐도우 복싱만 한다고 "복싱"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 없지 않나.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고 알 수 없는 것들이 인생에 참 많다. 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대비가 안되어 있더라.


그러니까 열심히 달리는 과거의 어느 순간에 나는 분명 길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 서비스를 만들면서도 느낀 점이 있다. 방향을 정할 때가 있고 달려 나갈 때가 있다. 방향을 정하면서 달려 나가는 건 생각보다 하기 어렵고 그다지 좋은 방법도 아니다. 과거에 나는 방향을 정했었고, 그다음에 달려 나갔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많은 조언을 흡수해내면서 마치 '러닝머신'처럼 학습했었다. 하지만 서비스에도 피봇이 필요하듯이 나에게도 피봇이 필요한 것 같다.


여전히 삶은 나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살아갈 건데?". 그리고 나는 여전히 삶에게 물어보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건데?". 달리고 성장하다 보면 조금은 다른 질문과 답변을 삶과 주고받을 줄 알았는데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달라진 건 외부의 시선뿐인가 싶다. 나의 삶이 맛을 찾아내려면 무엇인가가 더 필요하다 느낀다.


적절한 때에 나의 주변에 있던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삶에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공이라고 생각하고 모두가 그 공들을 한 움큼 팔에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공이 모두 유리공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라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고 몇 개만 유리공이고 나머지는 모두 고무공이라고 한다. 그래서 놓치면 튀어 올라서 그때 다시 잡으면 된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이 이야기가 많이 와닿았다.


남들이 뭐라 하건 남들이 어떻게 보던, 삶과 나의 대화를 통해 유리공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유리공만은 지켜낸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너의 유리공은 무엇이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는 하루를 살아본다. 어쩌면 나를 죽일 수도 있었던 공허감에서 벗어나며, 왠지 모르게 더 세상을 넓게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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