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급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배운 것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빠른 것에 중독이 되는 것 같다. 애자일, 린, 등이 “빠름”의 문화를 스타트업에 퍼뜨린 것 같다. 그러면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빠트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진정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한 스텝 스텝 차근차근 밟아가야 할 때가 많다. 빠름에 빠지다 보면 피상적인 수준에서 계속 머무르게 되는데, 시야가 좁아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피상적인지를 모른다. 단지 하루하루 불안해질 뿐이다. 나도 돌이켜보면 불안감에 빠르게 빠르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의 장점이라고 할만한 것이 창으로 뚫어버리는 듯이 강력한 실행력을 가지고 일을 진행시키는 것인데, 좋을 때도 많았지만 안 좋을 때도 많았다. 불필요한 불안감과 불편함을 주변에 형성하게 되고 그로 인해 결국 내가 그 결과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성과주의와 능력주의에 빠져서 더 잘하면, 더 빠르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문제는 심화될 뿐이었다.
그렇다고 느린 게 좋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느린 게 나쁜 것도 아니다. 일의 성격마다 적절한 속도가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인간관계와 신뢰라는 것은 패스트푸드처럼 금방 금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급하면 조급할수록 역방향으로 가게 된다. 내가 빠르면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다. 나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자기 할만한 하는 사람과 이야기해본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시켜 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보려면 달리기를 그만하고 멈춰야 한다. 굴러가는 대로 굴러가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보이는 환경에 있다 보면 멈춘다는 것이 큰 문제를 만들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멈춘다고 해서 문제 되는 것이 별로 없다. 사방이 가스라이팅이다. 그리고 나도 남들에게 충분히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투성이다.
최근에는 나의 인식과 성향을 만들어낸 나의 환경과 배경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있다.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무의식이 나를 결정하는 경우가 참 많다. 말을 하기 전에 이미 상대방에 대해서 판단하고 있을 때도 많다. 결국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왜 생겨났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과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배웠던 것을 잊어버리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기존의 나를 벗어던지면서 드디어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서 기쁘다. 그러면서 일하는 방식도 많이 변하고 있다. 대화의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대화할 때도 대화의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대화의 내용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대화를 하는 방식이 끼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동료가 나를 이렇게 말하더라. “예전에는 칼로 자르는 것 같이 일했는데, 요즘에는 실로 엮는 것 같이 일하시네요”. 나는 나의 변화가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스타트업에 있는 많은 분들이 겪고 있을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빠른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일하는 기계가 아닌 “사람”을 바라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