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다듬으면 길이 생겨
상담실에서든, 커피 한 잔 하는 자리에서든 종종 듣는 말이 있어.
"저는 아직도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진짜 모르겠어요."
말끝에 조급함이 묻어 있어.
모르는 게 싫어서라기보다, 모르는 상태로 버티는 게 불안한 거겠지.
그 마음 알아.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구직 중이거나 전직을 생각하면 세상이 자꾸 묻잖아.
어디 지원할 거냐.
어떤 직무가 맞냐.
너는 뭐가 강점이냐.
언제까지 결정할 거냐.
그 가운데 정작 나는 안 보여.
뿌연 안개 속에 서 있는 기분.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정답'을 찾으려고 해.
마치 책 뒤에 붙어 있는 답안지처럼.
근데 이 질문엔 답이 없어.
'하고 싶은 일'은 머릿속 어딘가에 숨겨진 보물이 아니거든.
살아보면서, 부딪히면서, 조금씩 빚어가는 결과물이야.
예전에 만난 한 사람도 그랬어.
기획서 쓰는 시간, 자료를 구조화할 때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됐대.
문제는 그 뒤에 꼭 이런 말이 따라온다는 거야.
"근데 이게 진짜 제 길인지 모르겠어요. 확신이 안 서요."
당연하지.
한두 번의 '재밌었음'이 평생의 '확신'이 되긴 어렵잖아.
중요한 건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멈춘다는 거야.
"확신이 서면 움직일게요."
하지만 말이야.
대부분의 확신은 움직이기 전이 아니라, 움직이고 난 다음에야 와.
걸어봐야 알잖아.
이 길이 좋은지, 어느 지점에서 내 발이 아픈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
지금 필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을 조금만 작게 만드는 거라고.
큰 질문은 사람을 얼어붙게 해.
너무 커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니까.
"나는 평생 뭘 하고 싶은가" 말고, 이렇게 바꿔보는 거야.
"내가 유독 집중이 잘 되는 순간은 언제지?"
"내가 지치지 않고 오래 붙잡는 건 뭐지?"
"내가 '이건 진짜 싫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뭐지?"
이 정도 크기면 오늘 하루에도 관찰할 수 있어.
관찰이 쌓이면 질문이 바뀌고, 질문이 바뀌면 선택지가 정리돼.
그때부터는 선택도, 지원도 조금 더 단단해져.
답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다듬으면서' 답을 만들어가는 것.
그러니까 지금 "모르겠어"는 네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야.
아직 재료가 더 필요하다는 신호일 뿐이야.
조금 더 부딪히고, 조금 더 관찰하고, 조금 더 적어보면 돼.
급하게 하나로 결정하려고 애쓰지 마.
지금은 결정보다 구체화가 먼저야.
- 이번 주에 유독 집중이 잘 됐던 순간은 언제였어?
- 그 순간을 힌트로, 내 질문을 '조금 더 작은 질문'으로 바꾼다면?
오늘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아요.
질문만 조금 더 작게 만들면 돼요.
그 한 걸음이 다음 칸으로 조용히 데려가 줄 거예요.
「멈춤 신호 앞에서 - 정체 구간은 '끝'이 아니라 '조정'의 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