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이름 지어주기
"선생님, 그냥… 힘들어요."
상담실에서, 혹은 가까운 지인들과 대화할 때 종종 듣는 말이야.
말은 짧은데 표정은 이미 무너져 있지. 이상하게도 그 다음 말이 잘 이어지지 않고.
정확히 어떤 부분이 힘든지 물어보면, 잠깐 멈칫하다가 대개 이렇게 말해. 그냥요. 그냥 다요.
그 '그냥'이라는 말 안에는 사실 거의 모든 게 들어 있어.
불안, 초조, 서운함, 자책, 피로, 허무…
말로 꺼내면 분명 여러 조각인데, 그걸 한 단어로 묶어버리면 마음은 더 무거워져.
덩치가 너무 커져서, 내가 나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감이 안 잡히거든.
어느 날 한 사람이 그랬어.
쉬어도 불안하고, 뭘 해도 제자리 같고. 이유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꿨어. 하루 중에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인지.
잠시 생각하더니 밤에 불을 끄고 누울 때, 마음이 훅 가라앉는다고 했어.
여기서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져.
'그냥 힘들다'에서 '밤에 마음이 훅 가라앉는 느낌'으로 바뀌는 순간, 감정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크기가 돼.
나는 한 번 더 물었지. 그럴 때 몸은 어떤 느낌인지.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얕아지며, 괜히 핸드폰만 더 보게 된다고 했어.
쉬고 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은 죄책감도 같이 올라온다고.
그제야 본인이 스스로 정리하듯 말하더라.
그냥 힘든 게 아니고, 잠들기 전에 마음이 가라앉고 죄책감이 올라오는 거였구나.
맞아. 바로 그거야.
감정에 이름을 지어주면, 감정은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아니라 내 상태를 알려주는 '정보'가 될 수 있어.
'나는 왜 이럴까'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이럴 때 내 마음은 이렇게 반응하는구나'로 넘어갈 수 있거든.
그래서 '밤에 마음이 가라앉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밤을 통째로 뜯어고치는 그런 결심이 아니야.
그 밤을 조금 덜 흔들리게 만드는 작은 장치 하나면 충분해.
잠들기 전에 오늘 한 일 세 줄만 기록으로 남겨봐.
'내가 오늘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구나' 하고 마음을 붙잡을 자리가 생겨.
그리고 내일 할 일을 딱 하나만 정해보는 거야. 막연함이 줄어들면 불안도 같이 줄어드니까.
손이 자꾸 핸드폰으로 가는 날엔, 억지로 참기보다 '5분만 더'를 허락해도 돼.
대신 타이머를 맞춰. 그 작은 약속 하나가 마음이 미끄러지기 전에 브레이크가 되어줄 거야.
대단한 해결책은 아니지.
근데 감정이 무너지기 직전에 방향을 살짝 틀어주는 데는 이 작은 것들이 꽤 도움이 될 거야.
"그냥 힘들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이미 꽉 차 있는 경우가 많아.
그러니까 오늘은 해결부터 하려고 덤비지 말고, 이름부터 지어주자.
내 감정에 이름이 생기면 마음은 조금 덜 무서워질 테니까.
- 요즘 내가 "그냥 힘들다"로 묶어버린 감정은 뭐야? (딱 2개만)
- 그 감정이 유독 선명해지는 '한 순간'은 언제야?
오늘 당장 고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 감정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무게는 분명 가벼워질 거예요.
「첫 번째는 상상, 두 번째는 경험 - 경험을 통해 기준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