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성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Jul 19. 2017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나와 맞는 사람

영화리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나와 맞는 사람



"내가 어떤 사람과 잘 통하는지, 

또 나는 어떤 것에 공감대를 이루는지."



단번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긴 어렵다. 어떤 사람은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숨이 콱 막히지만, 간혹 말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또 화수분처럼 대화가 쏟아지는 사람이 있다. 사실 첫 만남에 상대방과 통하려면 가치관이나 성향이 우연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것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인생에서 그런 인연이 또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가뭄에 콩 나듯 한두 명의 인연을 만나곤 하는데, 우리는 보통 그런 인연을 평생 잊지 못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단순히 ‘현재를 보라’란 의미 정도로만 해석하는데, 그것은 좁은 해석일 뿐이다. 영화가 드러내는 표면적 의미보단, 장면과 장면, 인물과 인물이 연결되면서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의미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아니, 궁금하지 않나. 우디 앨런 감독은 왜 주인공 길과 아드리아누를 갑자기 1920년대에서 19세기 후반의 시대로 이동을 시켰던 걸까. 또, LP판 판매원 가브리엘이 영화 중반부에 잠깐 등장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들이 쉽게 놓칠 수 있는, 장면이나 인물의 등장이, 사실 개별적인 의미를 띠고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의 말미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미국인 길과 약혼녀 이네즈가 함께 파리 여행을 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네즈: 자기는 환상에 빠졌어.

길: 자기한테 빠졌지.     


길의 사랑스런 고백과는 달리, 둘의 여행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사사건건 부딪혔고, 서로의 대화 방식은 어긋나기 일쑤였다. 물론, ‘잘난 체’ 폴의 등장으로 인해 둘의 대화가 더욱 꼬여버린 것이긴 했지만, 누가 봐도 길과 이네즈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둘이 진정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여기서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면 길과 이네즈는 왜 교제를 했던 걸까.    


  

여기에는 둘의 성향을 각각 비추어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이네즈는 굉장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보통 미국인들의 삶을 따르길 바라면서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타인이 우러러보는 존경 혹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길 원했던 것 같다. 그것은 이네즈가 단순 여행인데도 진주 목걸이를 챙겨왔던 사실이나 ‘잘난 체’ 폴을 마치 홀린 듯 추종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이네즈에게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한 길은 그렇게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길이 자꾸 파리에 남겠다고 하니 이네즈 입장에선 미쳐버릴 노릇이었을 테다.   

   

그렇다면 길의 경우를 보자. 길은 아마도 살면서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을 남들에게 인정받았던 경험이 별로 없는 듯했다. 자신이 쓴 순수문학 소설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극도로 꺼려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네즈 또한 그의 가치를 그다지 인정해주지 않았는데도 교제를 선택한 걸 보면, 길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 만남을 어느 정도 포기한 듯했다. 그저 단순하게, 길은 이네즈의 예쁜 외모만 보고 만남을 지속해왔던 건 아닐까.      



영화의 내면을 보면, 우디 앨런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가치는 단순한 판타지적 스토리가 아니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그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을 뿐이지, 영화 탄생의 근원적 배경은 아니었다. 그는 그러한 설정을 통해 누구든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실제로 낮에는 이네즈, 밤에는 아드리아누를 보여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직접 비교하게 하였다. 확실히 길을 무시하고 바꾸려했던 이네즈와 달리 사소하고 어설픈 말에도 웃어주고 귀담아듣는 아드리아누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왜 길은 여러모로 맞았던 아드리아누와도 틀어진 걸까. 그것은 아마도, 우디 앨런 감독이 영화가 극적인 요소 빠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끝이 날까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영화가 그대로 끝이 났을 때 자칫 길이 현실에 적응 못하고 과거를 연모하는 현실 부적응자로만 비춰지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시간 여행이란 소재가 관객들에게 크게 각인이 되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짙은 색채를 덜어주고,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가브리엘이 중간에 갑자기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가브리엘은 바로 현실의 아드리아누였던 셈. 콜 포터의 LP판을 사는 짧은 시간 동안 길은 그녀와 깊은 공감대를 이룬다. 둘이 나눈 대화는 단 몇 마디에 불과했지만 서로의 눈빛은 생기로 가득했다. 사실 LP판을 사는 장면은 앞뒤 상황으로 보았을 때 그렇게 중요한 신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장면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마지막에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의 결말이 무척 마음에 든다. 우디 앨런 감독이 표현코자 했던 분명한 의미를 마지막 장면에 훌륭하게 녹아내렸다. 그렇기 때문인지 영화의 여운이 길게 남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어쩌면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선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무작정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판단 기준을 타인에게 넘겨버린다면, 나는 영영 참된 짝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과 잘 통하는지, 또 나는 어떤 것에 공감대를 이루는지, 가장 먼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길이 가브리엘을 운명처럼 다시 만난 것처럼, 적어도 앞에 나타났을 때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2017.07.19.

작가 정용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나와 맞는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리뷰] 워낭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