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성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Aug 23. 2017

영화 <로건(Logan)>
우리는 영웅의 삶을 꿈꾸지만

영화리뷰


영화 <로건(Logan)>, '우리는 영웅의 삶을 꿈꾸지만'



"알고 보면 이 땅 위에

부족함 없는 존재는 없고,

우리는 모두 그 부족함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영웅의 삶을 꿈꾼다. 못 가진 자는 한이 많은 법인데, 영웅들은 ‘가진 자’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가진 자. 물론 그것이 현실에서 허무맹랑한 소리에 그칠지라도 우리는 한 번쯤 가상의 특별한 능력을 꿈꾸곤 한다. 영웅들의 힘을 빌리고 싶은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닥치기 때문. 당장 오늘 같이 방안에 틀어박혀 미동도 하기 싫은 날엔 순간이동 같은 초능력을 써서 손쉽게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싶다. 그렇듯 상상 속 영웅의 이미지는 왠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완전한 상태로 삶을 영위해 나가는 그런 존재였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그토록 히어로물에 열광하는 것일 수 있다. 시원시원한 액션과 강력한 힘이 불완전한 우리에게 대리만족을 안겨다 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 반해 지금까지 영웅들의 인간적 삶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들은 악당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 때 뿅-하고 나타나 가까스로 악당을 무찌른 뒤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사실 사라졌다기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영웅들의 삶까지 굳이 소재로 다루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는 그들의 평소 삶도 완전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종교적인 믿음이 있다.      


그래서 더욱이 영화 <로건(Logan)>이 반가웠던 것 같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사람들의 가려움을 긁어주기 위해 손수 팔을 걷어붙였다. 모두가 궁금해 했지만 아무도 다루지 않았던, 바로 영웅의 인간적 삶. 흡사 찬란한 빛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의 모습. 그리고 로건의 최후. 17년간 우리 곁을 꾸준하게 지켜오던 한 영웅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이 개인적으로 꽤나 힘들고 아쉬운 일이었으나, 영웅의 인간적 삶이란 소재와 하나로 묶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절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결국 영웅 로건도 한 인간이었던 셈.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로건은 제멋대로 자란 턱수염이 얼굴을 뒤덮고 있는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직전 시리즈까지의 화려한 영웅은 온 데 간 데 없고 그에게서 평범한 사람 냄새만이 물씬 풍겼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어쩌면 그 모습이 그가 바라던 그림이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영웅의 삶을 꿈꾸듯 그도 꿈꾸는 삶이 있었을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 <로건(Logan)>의 수많은 장면 중 가장 핵심적인 장면으로 개인적으로 농가에서의 저녁식사를 꼽는다. 제임스 맥골드 감독이 관객들에게 보내는 대부분의 메시지가 사실 흑인 가족과의 평범한 저녁식사에 전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찰스: “집, 사랑하는 사람들. 이런 게 바로 삶이라네.”     


사실 제정신의 소유자라면 정신없이 쫓기고 있던 와중에 태평하게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나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데, 그만큼 이 장면은 뺄 수 없었던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자식의 진로 때문에 부모와 마찰을 겪는 저녁식사 풍경이나 하루를 마무리하며 한가로이 음악을 듣는 흑인아들의 모습처럼, 한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그들에겐 그저 그림의 떡이었을 테니까.    

  


찰스: “자네에겐 아직 시간이 있다네.”

(중략)

로건: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늘 험한 꼴을 당해.”     


프로페서X의 말과는 달리, 로건은 평범한 인생을 새로 시작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동안 케일라 실버폭스, 진 그레이, 마리코뿐 아니라 수많은 돌연변이 동료들까지, 마음을 섞고 함께했던 모든 이들이 죽거나 그에게서 떠났다. 누군가를 곁에 둔다는 게 이제 그에게는 그토록 힘든 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결국 그의 말처럼 찰스, 칼리반 그리고 자신까지도 전부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소중한 생명이 있었다.     


그건 바로 로라(X-23)의 존재.      


로건: “이런 기분이었구나... 놈들의 뜻대로 살지 마.”      



로건은 부성애와 같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을 결국 삶의 끝자락에 놓였을 때 진심으로 느끼게 된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한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는 희미하지만 감격스런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그는 로라와 만난 지 불과 며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로건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 그의 개인적인 삶의 배경, 그리고 17년간 쌓아왔던 울버린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맞다. 로건은 평범한 삶을 그리워했다.     



영화 <로건(Logan)>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라는 따위의 말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이 땅 위에 부족함 없는 존재는 없고, 우리는 모두 그 부족함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다. 제임스 맥골드 감독은 어쩌면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2017.08.23.

작가 정용하

영화 <로건(Logan)>, '우리는 영웅의 삶을 꿈꾸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나와 맞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