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두 사람만 만나도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된다.
도심 속 한적한 동네카페. 심플하면서 아늑한 카페 인테리어. 그리고 꽃집을 방불케 하는 곳곳의 꽃 장식. 나는 오래 전부터 카페를 여행이라 여겼다. 시원한 음료며 맛있는 디저트,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 또 장소마다 색다른 분위기까지. 카페는 여행이 지니고 있는 요소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영화 <더 테이블>의 주 배경으로 소개되는 카페 역시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을 만큼 특유의 진한 색깔이 배여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을 들르는 사람들의 대화 역시 조용한 분위기를 따라 그 깊이가 있었다. 무언가 그곳이라면, 연예인이 되어버린 전 여자친구를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호감 있는 상대방에게 수줍게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 비밀스런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전편인 영화 <최악의 하루>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김종관 감독은 카페를 ‘마음이 지나가는 곳’이라 표현했다. 그렇다. 카페는 사연의 집합소로써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연 없는 사람은 없고, 저마다 다 다른 사연을 품고 있다. 얼핏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여도 막상 한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똑같은 사연이 하나도 없다. 특히 감성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런 점을 크게 느꼈다. 주로 카페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겉보기에 평범한 대학생도, 평범한 직장인도, 속사정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경우가 많았다. 그 사연을 듣고 있으면 때론 설렜고, 때론 슬펐고, 때론 내 일 같았다. 어느 사연도 서로 비슷하거나 익숙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였다. 두 사람만 만나도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된다. 영화라는 게 별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잘 풀어낸 영상 매체에 불과하다. 김종관 감독은 누구보다 그 점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는 감독이 아닌가 싶다. 그에게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인원은 단 두 사람이면 족했다. 이것은 분명 의미가 큰 일종의 도전이었다.
김종관 감독의 그런 도전이 아름다운 이유는 대세에 편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낯선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졌다. 근래 들어 영화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하고 규모만 무작정 커지면서, 알맹이 없이 관객들의 말초신경만 자극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은 상업 영화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도대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건지, 마치 활은 쏘았는데 정작 날라 가는 화살은 없는 느낌이다. 결국 우리가 감동을 받고 영향을 받는 건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것이 점점 뒷전이 되고 있는 인상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더 테이블>은 영화계에 문제제기를 던지면서 동시에 김종관 감독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난 두 사람이면 돼’라고 귀에 속삭이듯, 독특한 소재 없이도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었다.
영화 <더 테이블>은 개봉 전부터 임수정, 한예리, 정은채, 정유미 등 대세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한 장소에서 네 가지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장소만 같을 뿐 에피소드간의 연결지점이 없어 관객들이 다소 난해할 수 있다. 그러나 김종관 감독은 애초부터 그런 연결지점을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그저 각각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온 신경을 쏟았다.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영화 <더 테이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영화 전체를 가르는 줄기였다.
사실 자극적인 영화라 해서 무조건 비판받을 만한 소지가 있는 건 아니다. 분명 그런 영화를 원하는 관객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그 수는 많다. 중요한 건, 다양성이다. 어떠한 장르의 영화든 돈의 가치로만 평가받지 않는 환경. 그것이 건강한 생태계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관 감독의 도전이 멈추질 않길 소원한다. 그리고 그의 행보에 진심으로 응원한다. 선선해져가는 8월의 늦여름 밤, 영화 <더 테이블>을 보면서 잔잔한 여운을 끌어안은 채 하루를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다.
# '브런치 무비 패스 #1 영화 <더 테이블>'
2017.08.27.
작가 정용하
영화 <더 테이블> 무채색의 화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