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없는 리뷰
그냥 뻔한 감성팔이 하는 영화 아니야?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아는 형이 내게 물었던 말이다. 휴먼코미디 영화가 다 거기서 거기인 거 아니냐고. 형은 영화 중반부까지는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다가 영화 말미에 다다라 감동적인 장면들을 몽땅 쏟아 부어 눈물콧물을 다 쏟게 만드는, 뻔한 구성의 영화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화는 흔한 전개 방식을 따랐다. 그러나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기존 영화들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진정성. 슬픈 분위기를 억지로 조장해 쥐어짜는 듯 감동을 뽑아내는 게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만한 상황을 그려내 눈물이 저절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한데 그 눈물이 결코 부담스럽거나 창피하지 않은 눈물이었다. 나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영화의 여운에서 잠시 동안 헤어나지 못했는데, 그것이 슬픈 감정이라 해서 재빨리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잠시 동안 자리를 지킨 채 그 감정에 머무르려 애썼다.
친형: “영화관에서 눈물 흘린 적 처음이야.”
그건 형뿐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눈물을 훔쳤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관객들 평이 유독 좋아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형과 시간 내서 본 영화였다. 원래 줄거리를 챙겨보지 않은 채로 영화 보는 걸 즐기는 편이라 사전 정보도 부족한 상태였다. 그런데 웬 걸, 영화 중반부부터 눈물이 차올라 쉽게 눈을 깜빡이지 못했다. 그리고 나옥분 역의 배우 나문희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가슴속이 꿀렁거렸다. 그건 형과 나뿐이 아니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코를 홀짝거리는 소리가 관객석 곳곳에서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그래서 누군가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슬픈 영화냐 묻는다면, 나는 가감 없이 관람객 모두가 시원하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영화라고 답하려고 한다.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고 계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사실 일본군 ‘위안부’ 소재의 영화는 이미 친숙하다. 2015년 ‘12·28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 재조명과 동시에 국민적 관심이 뒤따르면서 최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여러 편이 제작이 되었다. 2014년 <소리굽쇠>, 2016년 <귀향>, 또 올해 <눈길>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같은 해 가을, 김현석 감독은 다시 한 번 일본군 ‘위안부’ 소재의 영화를 들고 나왔다. 사실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만 보았을 땐 소재 자체에서 주는 진부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김현석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그것을 새로움으로 탈바꿈하였고,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현실적 이해도를 높였다.
영화 속 나옥분 할머니처럼, 우리 사회에서 죄인인 마냥 아픔을 숨기셨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졌다. 잘못의 주체는 일본에 있는데, 왜 우리 죄 없는 할머니들이 조심하며 살아가야 했던 것일까.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그런 할머니들의 아픔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어 공감을 샀다. 역사적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현실적 관점에서 바라봤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영화였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극 중 나옥분 역의 실제 인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로, 그녀는 2007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였다. 영화에서와 달리, 당시 이용수 할머니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증언을 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그렇게 연출했다지만, 실제 증언 역시 울분이 터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청문회가 열린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측 사과는 없었으며, 그에 관한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그분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우리가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며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리뷰가 필요 없는 영화
사실 나도 영화 해석을 쓰고 있긴 하지만, 정말 좋은 영화는 해석이 필요 없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만들어진 의도대로 관객들에게 전달만 된다면 굳이 별다른 해석이 필요치 않다. 그것이 좋은 영화의 기준이다. 영화의 내용이나 결말이 일반 사람들의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영화 해석을 빌리곤 하는데, 사실 이는 그 자체로 전달 매체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충족하지 못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별다른 해석 없이 보아도 메시지와 감동이 충분히 전해지는 영화였다. 특히 영화가 이토록 진정성 있게 그려질 수 있었던 건, 배우 나문희의 명품 연기 덕이 컸다. 그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나옥분 역에 완벽하게 빙의하여 영화의 진정성을 보탰다. 9급 공무원이자 영어 과외 선생님이었던 박민재에게 따듯한 말투로 ‘밥은 먹은 거여’라고 건네는 그녀의 말에서 나는 푹신한 이불에 얼굴을 파묻은 듯한 포근함을 느꼈다. 이외에도 눈물샘을 자극하며 때로 울분을 터지게 만드는 장면이 많았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별도의 리뷰가 필요치 않다. 그저 마음을 활짝 연 채로 영화를 즐기기만 하면 영화가 알아서 따뜻함 한 스푼과 감동 한 스푼을 당신에게 안겨줄 것이었다.
감히 최고의 영화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아직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번 긴 연휴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기를 권유한다.
작가의 한줄평
재미와 의미를 다잡은 최고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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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4.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