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용하
줄거리 없는 리뷰
사는 자 따로, 죽는 자 따로
영화 <남한산성>은 나라의 운명을 건 두 충신의 치열한 썰전(?)으로 집약할 수 있다. 관객들은 인조(박해일)만큼이나 누가 옳은지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사실 명분만을 강조하는 김상헌(김윤석)이나 화친만을 주장하는 최명길(이병헌) 둘 다 답답하고 고집스러웠다. 그런데 여기서 남한산성의 대장장이 서날쇠(고수)의 대사가 눈에 띄었다.
대장장이 서날쇠: “청을 섬기든, 명을 섬기든, 저와 상관없는 일.”
정치지도자들이 어떤 말을 하든, 누구를 섬기든 사실 백성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즉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목숨을 내걸고 따라야 하는 자는 정해져 있다.
영화에서 지도자의 무능, 지도자의 결정에 따라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무참하게 희생되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중요한 결정은 지도자들이 내렸지만 희생되는 건 무고한 백성들뿐이었다. 단적인 예로, 영의정 김류(송영창)의 의지로 기습부대 300명을 사지로 내몰았던 경우를 들 수 있다. 결국 전멸에 가까운 사상을 내고 마는데, 영의정 김류는 이에 따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오히려 장군 이시백(박희순)을 패전의 원인 제공자로 몰아 책임을 전가해버렸다. 한 번의 오판으로 삼백 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가 버렸는데도 지도자들은 뒷짐만 질 뿐 그 누구도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대장장이 서날쇠가 또 한 번의 일침을 가한다.
대장장이 서날쇠: “나는 벼슬아치들을 믿지 않소.”
관객들이 서날쇠의 대사에 공감하는 이유도 이 말이 현실 사회에도 적용 가능하기 때문일 테다. 여의도에서 하루도 조용한 날 없이 공방을 벌이지만, 일반 시민들이 그것을 외면하는 데는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깊게 깔린 불신 때문이다. 충신인 김상헌이나 최명길이나 그 외 벼슬아치들이나 결국 자신들이 살 궁리만 할 뿐이다.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익만 대변할 뿐 서민들의 삶은 등한시한다. 아무리 나 잘하고 있소, 선전을 해도 서민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지루한 영화라는데
139분, 2시간 20분에 달하는 영화의 러닝 타임이 다른 영화에 비해 다소 길긴 길다. 그러나 지루하다는 일부 사람들의 평에는 반박하고 싶다. 영화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
분명 지루하단 평을 내린 사람들은 영화 <남한산성>을 화려한 전쟁 영화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메인 예고편 역시 그러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러나 예고편에 나오는 전투장면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전쟁 영화는 아니었다. 김훈 원작의 소설 <남한산성>을 영화화한 만큼, 원작에 충실하려 애를 썼다. 영화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당시 청의 포위로 오도 가도 못하는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을 건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만큼 치열한 전투보다는 임금의 고뇌와 신하들의 갈등, 고립되고 굶주린 상황이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묘미를 충분히 잘 살린 영화가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 역사적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이라면 지루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을 테다. 그러나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촉각을 다퉜는지, 또 그 역사가 얼마나 우리에게 뼈아픈 일이었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비단 과거의 일로 치부하기엔 오늘날의 상황과 너무 닮아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의 시대적 현실과 또 어떤 줄 뒤에 서야 할지 고민만 하는 꼴을 보면 속이 꽉 막힌 것 마냥 답답했다. 그러는 사이 정작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궁핍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명분이 무엇이길래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명분을 중요시해왔다. 손해를 보더라도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에 비해 실리를 챙기는 사람을 간사하고 천한 사람이라 취급했다. 그러나 명분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쓸모없는 말이다. ‘명분’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신분 사회에서나 쓰던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중들은 실리를 챙기기 바쁘다. 명분은 얼어 죽을 명분. 살아남기 버거워 죽겠는데 명분을 챙길 여력 따위는 없다.
현대사회에서는 기득권들이 명분을 꼬옥 쥐고 있다. 예의라는 명목으로 그들만의 부조리와 관행을 만들어 명분을 현대적으로 재생산했다. 실제 이익과 전혀 직결되지 않음에도 명분을 그 어떤 법규보다 중요시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끝이 없는 경제 불황 터널을 지나고 있고, 많은 사회·외교 문제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명분만을 중요시하며 정작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단지 김상헌과 최명길의 대립으로만 비춰지지만, 사실 그 둘의 말 대 말도 정작 일반 백성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황동혁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정치지도자라면 무릇 명분보다 실리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영향을 주어야 하는 법. 이는 현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대장장이 서날쇠의 대사가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듯, 일반 대중들이 정치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결국 그러하다. 자신들의 이익만 지키기 위해, 즉 명분만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말고, 국민들의 삶을 위해 애써 달라 당부하고 싶은 것.
이 영화는 어쩌면 지도자들이 초심을 다지며 마음에 새겨야 하는 영화다.
작가의 한줄평
지도자들이 꼭 보아야 할 영화
명분보단 실리를 택하자
# 영화후기, 매주 한 편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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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7.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