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어벤져스’의 사무엘 잭슨과
‘매트릭스’의 캐리 앤 모스
이 둘의 라인업만으로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걸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국내 영화계에서도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등의 대배우가 출연하면 흔히 ‘믿고 본다’라는 말을 사용하곤 하는데, 영화 <언싱커블>이 바로 그러한 영화였다. ‘어벤져스’ 닉 퓨리 역의 사무엘 잭슨과 ‘매트릭스’ 트리니티 역의 캐리 앤 모스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믿고 볼 수 있는 영화의 범주에 속했다. 영화는 러닝타임 90분 내내 일촉즉발의 긴장된 상황이 이어졌는데, 관객들이 영화에 깊게 몰입할 수 있었던 데는 사무엘 잭슨과 캐리 앤 모스의 호연 덕분이었다.
킬링타임 영화
러닝타임 90분. 다른 영화에 비해 다소 짧은 영화이긴 하다. 그러나 그걸 감안한다 해도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긴장감을 확 높이더니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내내 우리의 시선을 뺏어갔다. ‘시간순삭(‘시간 순식간에 삭제’의 줄임말)’의 영화였다.
그렇다고 자극적인 장면을 늘어놓았냐, 그렇지도 않았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기 때문에 잔인한 장면이 빈번하게 나오는 줄 알고, 솔직히 쫄았는데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몇몇 고문하는 장면들이 다소 잔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당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진 않았다.
영화는 그런 것들보다 배우들의 말과 상황의 긴박함으로 관객들의 몰입감을 이끌어냈다. 선택의 문제, 인권의 문제 등 민감한 문제들의 해법을 관객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 앞에 끊임없이 선택지를 들이밀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가치의 충돌을 경험했다. 우리는 무엇이 맞는지 감히 선택할 수 없었다.
무엇이 인권인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 인생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프랑스 철학자 장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밥을 먹을 것인가, 치킨을 먹을 것인가, 하는 사소한 고민에서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진로 문제까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제각각이며 다양하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들을 수학 공식처럼 단번에 해결할 수 없는 이유는 각각의 선택마다 그에 따른 이득이 존재하고 또 반대로 손해가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어떤 선택이든 간에 딜레마적인 요소는 대부분 존재한다. 확실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수만 있다면 선택하는 데 어렵지 않겠지만, 현실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영화 <언싱커블>도 그러한 선택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무엇이 인권인가, 그리고 당신이 책임자라면 어떠한 명령을 내릴 수 있겠는가, 무엇이 올바른 행동인가, 같은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참 어렵다. 어떤 상황이든 피해는 면치 못한다. 다수의 인권을 위해 소수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합당한가에 대한 답도 매우 어렵다.
그러나 영화는 결과적으로 다수의 인권을 위해 소수의 인권이 무시되었다.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잔인한 방법을 써버렸다. 이는 단순히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발언이기보다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이 소수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경우가 얼마나 많겠는가에 대한 문제 지적이다. 영화도 이러한 문제 지적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푸념처럼 늘어놓듯 이는 무척이나 어렵고 쉽사리 내릴 수 없는 문제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람 수가 적다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의 문제
영화 속 상황에 내가 속해 있다고 하면 어떠할까.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될까. 솔직히 단언하기 어렵다. 그레고 조던 감독은 당신이라면 어떠한 선택을 하겠냐며, 하나의 선택을 유도했지만, 나는 그 선택을 피하고 싶다.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라면, 잔인하지 않는 방법을 쓰면서 최대 다수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겠지만, 이와 같은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FBI 요원 브로디처럼 그 어떠한 경우라도 도덕적 행위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테러리스트 영거처럼 완벽한 테러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양의 폭발 물질과 기술, 재력, 고문을 참는 인내 등이 현실에서 완벽하게 갖춰지기 어렵다. 나는 그렇게나마 위안을 삼고 싶다. 분명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작가의 한줄평
사무엘 잭슨의 영화는 언제나 옳다.
킬링타임용 영화로 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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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5.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