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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Nov 28. 2017

[책 리뷰]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사랑? 응 아니야~


[책 리뷰]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사랑? 응 아니야~

  


이석원의 책은 읽는 이가 민망할 정도로 솔직 그 자체다.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도 마찬가지였지만, 3편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그 솔직함의 정도가 한 술 더 뜬다. 책의 이야기가 꾸밈없는 진실이라면, 어떻게 그 정도로 많은 이들 앞에 솔직할 수 있나 싶다. 이석원의 책은 그만큼 인간 본연의 감정을 이야기하기에,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자신의 속이야기를 서슴없이 털어놓는, 그의 용기를 있는 힘껏 칭찬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석원의 글은 나의 글과 닮은 점이 많다. 나도 그만큼 담백하고 솔직한 글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의 글 스타일은 첫 편 <보통의 존재>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런데 이석원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다. 나는 아직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그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이번이 세 번째 읽는 거였다. 가독성이 좋고, 글이 담백하여 언제든 읽기 편했다. 나는 사람 냄새가 그리울 때 줄곧 이 책을 꺼내들곤 했다. 소설보다 더욱 소설 같고, 소설처럼 마냥 뻔한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랄까.      



그러나 이번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컸다. 기분 좋은 느낌보다 반대의 느낌이 더욱 강렬했다. 나도 전의 느낌과 너무 달라 적지 않게 당황했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걸까.     





전에는 단순히 이석원의 감정만 눈여겨보았다. 그가 느낀 감정이 하도 나와 비슷하여 읽으면서 나도 같이 따땃하게 달아올랐다가 상심했다가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번엔 이석원의 감정보다 둘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읽었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      



그러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의 연속이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 사랑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석원 혼자 일방적으로 사랑했던 것도 아니다. 이 둘을 그저 사랑이란 감정으로 묶기가 거북스러웠다. 내 눈에는 그저 이기적인 마음의 충돌일 뿐. 그리고 자신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행동의 충돌일 뿐. 무엇도 아니었다.      



둘 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석원보다 김정희를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장 먼저 본인이 필요할 때만 남자를 찾는 것부터.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어떻게 그런 규칙을 마음대로 정할 수가 있을까. 그녀가 전 남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3년이나 끌어온 이혼 과정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그래, 그녀가 받았을 상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면 상식적으로 그 상처가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갈 때까지 누군갈 만나선 안 되는 게 당연한 인지적 판단 아닐까. 이혼 과정 중에 남자를 소개 받는 것부터가 남자를 이용하겠다고 선언한 셈이 되는 거다. 그녀는 이미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나는 상처 받은 사람이니, 무조건 이해해 달라, 자신 없으면 날 좋아하지 마라. 연락은 나만 할 수 있으니, 너는 나에게 절대 연락하지 마라. 나는 상처 받은 사람이니, 많은 걸 묻지 마라. 날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하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거기서 끝이다.   


   

이게 말이 되나. 이 억지스런 관계를 받아들인 이석원도 정말 답답하지만, 이런 걸 요구한 여자가 더욱 이해가지 않는다. 이 무리한 조건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여자는 시간이 필요했고, 충분한 시간 동안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졌어야 했다. 남자를 바로 만나선 절대 안 됐다. 나는 그녀가 헛헛한 마음을 달래겠다는 이기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자도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그 무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가 있지. 그녀를 사랑한다며 구구절절한 소리를 늘어놓는데, 내 눈에 그건 사랑이 아니다. 애초부터 그는 여자를 잠자리 파트너로 만족했고, 충분히 즐겼고, 자신을 찾아주는 존재가 있어 그냥 좋았던 거다. 예쁘고 자기보다 열 살이나 어린 여자가 데이트 할 때마다 잠자리를 가져주는데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석원은 그게 좋았던 거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다. 사랑한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항상 사랑의 피해자인 것처럼 동정심을 갈구하는 듯해 눈살이 찌푸려졌다. 둘 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격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남자의 감정 자체는 공감이 가고 마음을 울렸지만, 둘의 관계는 어딘가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비록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번에 책에 대한 새로운 감상을 지니게 되었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저 이런 감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이유를 떠나 기분이 좋은 일이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뭐해요? 나도 가끔 그 물음을 받을 때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다. 내가 소중한 사람에게 그 말을 해주어도, 상대방도 나만큼 기분이 좋아질까. 오늘 밤 마음먹고 한 번 물어봐야겠다. 



2017.11.28.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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