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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Dec 12. 2017

[책 리뷰]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2017년 노벨문학상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책 리뷰]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2017년 노벨문학상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그는 영국계 일본인으로, <남아 있는 나날>은 일본의 이야기가 아닌 20세기 초반의 영국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 사람이 영국 이야기를 담는다는, 다소 이질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이 작품. 그러나 그는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한 덕분에, 누구보다 더욱 그 시대 영국의 국내외 분위기를 잘 구현해냈다. 세심하고 섬세한 동양적인 문체와 웅장하고 화려한 서양적인 문체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남아 있는 나날>은 내게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남아 있는 나날>이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사실을, 나는 몰랐다. 그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고, 유명세를 조금 탄 이유로 별 생각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읽고 나보니, 충분히 그럴만한 권위가 있는 작품이었다. 솔직히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가즈오 이시구로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과 문체가 내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소설을 쓴 장본인은 가즈오 이시구로이고, 소설 속 화자는 스티븐스인데, 소름 끼치는 혼신의 연기를 선보이는 명품 배우처럼, 작가는 주인공에 완전 빙의되어 있었다. 정말 실존해 있는 인물인 것처럼, 흡사 실제로 스티븐스가 지난날을 회고하는 자서전을 쓴 것처럼, 작가의 글에 스티븐스가 완전히 녹아내려 있었다. 사실 소설가라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기도 한데, 가즈오 이시구로만의 정직한 직구가 정확히 먹혀들었다고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티븐스는 최고의 가문에서 집사로서 직무를 수행했던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일밖에 모르는 일벌레이자 직업병인 듯 모든 행동과 언사에 있어 조심성이 묻어나 있다. 또한 그는 관계적인 부분에 아주 서툴러, 난해한 상황이 닥치면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그의 성향이 글에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이는 당연한 듯 보이지만,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인간다움을 잃지 말기를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남아 있는 나날>은, 그 시대 최고의 집사 스티븐스가 6일간의 여행 동안 지난날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다했는지, 또 무엇을 포기하며 살아왔는지, 책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스티븐스는 담담한 기색을 유지하는데, 표현과 문체가 워낙 세심하고 정확하여 지루하진 않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참 멍청한 사람이었다. 그가 일적으로는 당대 최고의 사람으로 불렸을지언정, 인간이란 측면에서 봤을 땐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마디의 말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그냥 일만 열심히 한 바보. 노년이 되어서까지 끝까지 일만 챙기는 한심한 사람. 세상으로부터 후한 평을 받기 위해 자신의 인간적 삶을 포기한 안타까운 사람.     


 

나는 스티븐스의 직업적인 성공이 있기까지의 그 노력에 대해 깎아내릴 생각이 추호도 없다. 다만, 나는 그가 안타까울 뿐이다. 그 위치에 올라가기까지 스티븐스가 놓친 것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중 가장 큰 가치인, 사람을 놓쳤다. 아니, 사랑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가 그토록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이유는, 관계가 서투르고, 불확실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매사 신중을 가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그에게 관계는 너무 어렵고, 리스크가 큰 분야였을 테다. 그러니까 자기가 노력하는 만큼 배신하지 않는 집사 일에 그토록 최고의 열정을 다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스티븐스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꽤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도 스티븐스처럼 직업적 성공이나 사회적 위치에 너무 목매고 있는 건 아닌지. 그 곁을 지키는 소중한 인연을 모른 체하고 무관심하게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스스로, 인간다움을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외로워질 뿐인데.      



나도 마찬가지다. 요즘 관계보단 글을 쓰는 일에 더욱 혈안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 스스로 인간성을 포기하는 일을 하지 말자. 절대 관계를 지금처럼 손 놓지는 말자. 관계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직업 이전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사실 이것은 개인이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직업적 성공이 정말 자신이 느꼈을 때 가장 큰 가치일 수도 있다. 그러한 개개인의 특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에 따라 잃는 가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어느 것에 어느 정도 가치를 두느냐. 이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2017.12.12.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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