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집 22편
[감성에세이] 앞으로 반년 동안 놀 거다
“그럼 앞으로 뭐할 거야?”
내가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할 생각이 없다고 하니까, 대개 따라붙는 말이었다. 숱하게 받는 물음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당혹스러웠다. 무얼, 어떻게 답해야 할지. 물론, 아무런 계획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게 물어오는 상대방에게 나의 계획을 구구절절 말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알바하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 좀 해보려고’, 라는 정도로 얼버무렸다.
나는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대략 70년간 일할 거리를 신중하게 선택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어떠한 공백도 없이 취업전선에 당장 뛰어드는 것이 성공한 인생을 뒷받침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민하겠다고만 하면, 남의 인생에 뭐 그리 관심이 많은지, 내가 방황하고 있다고 확신을 내려버린다. 혹자는 고민하지 말고 어떤 일이든 빨리 경력을 쌓으라고까지 참견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은 왜 지금 그 일을 하냐고. 경력을 쌓아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당신의 인생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인생이냐고. 나는 나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을 뿐이고,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을 얻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타인이 그러하니까, 나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에 거부감을 느낄 뿐이다.
물론, 내가 이러한 선택을 내리게 되면 적잖은 최소비용이 뒤따른다. 일단 돈을 모으지 못한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 저축 없이 생활비로만 버는 돈을 전부 지출해야 한다. 그러면 연애라든지, 결혼이라든지, 꿈도 못 꿀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나의 삶을 살기 위해 결혼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앞으로 어찌될는지 한치 앞도 바라볼 수 없지만, 안정적 삶을 꿈꾸지 않는 내게 감히 누가 시집을 오겠는가. 그런데 막상 포기를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막상 욕심을 버리면 보이지 않는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미래를 조금 더 여유를 안고 준비할 수가 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릴 수 있다.
타인과의 경쟁 선상에서 나 혼자 벗어나겠다는 다짐은 굉장한 소외감을 몰고 온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현실적인 이야깃거리를 나눌 때, 나는 이상주의자로 낙인찍힌다. 불신의 눈빛과 비웃음을 한몸에 받는다. 이는 확실한 결과를 내는 것과 상관없이, 선택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자 뚜렷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무나 선택할 수 없는 일이라 나는 확신한다.
이제 구체적으로 내가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적어보도록 하겠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확신을 얻기 위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어떠한 일이 나의 성향에 가장 맞고, 또 그 일이 내게 변하지 않을 가치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있다. 평생 동안은 아니더라도, 향후 10년간 믿음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내게 묻고, 또 묻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구체적인 계획이라 일컬을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과정이라 확신한다. 이것은 나를 위한 일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예민한 편이다. 감정의 깊이가 깊고, 자의식이 강하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성향이다. 글을 좋아하고, 나만의 공간에서 안정을 얻는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한다. 의미가 없는 일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열과 성을 다할 수 없다. 나는 나만의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나의 전반적인 성향을 고려해봤을 때, 글을 쓰는 일이 내게 제격이다. 예민한 성격을 그대로 종이에 적어내며 관계 찌꺼기를 걸러낼 수 있고, 자의식이 강한 내게 딱 맞으며,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성향에 어울리는 일이다. 글의 공간은 나의 의지에 따라 크기 변화가 자유롭고, 안정적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마음껏 혼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반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써보려고 한다. 이것이 나의 향후 계획이다. 그런데 이를 타인에게 설명하자면 적잖이 피곤하고 번거롭다. 타인에게 별 관심 없는 존재가 우리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굳이 떠벌리고 다니면서까지 괜한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떠안고 싶지 않다.
나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어쩔는지 나도 모른다. 나의 실력에 따라, 또 운에 따라 글로 밥 벌어 먹고 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내 의지를 고집할 수 있는 기한은 한 서른 살 정도까지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나는 완전히 현실에서 도태되고 소외된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늘 세상과 소통하며 사회 변화의 흐름을 몸으로 온전히 느끼면서 글을 쓰고,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이러한 복잡한 생각이 늘 나를 사로잡기에, 사람들이 내게 ‘그럼 뭐 할 거야?’라고 물어오면,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서 그저 ‘앞으로 반년 동안 놀 거야’라고 간단한 답변을 늘어놓게 된다. 아무렴 어때.
2017.12.27.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