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싱글라이더> 성공한 인생에 대한 정의는 누가 내리는 걸까
증권회사의 지점장. 화려하고 큰 집. 억 소리 나는 외제차. 단란한 가족.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데 이견이 없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성공의 지표로 삼는 것들이 아닌가. 그런데 강제훈(이병헌)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제사상에 올리는 말린 황태포가 생각났다. 절대 사람의 생기라 볼 수 없는 안색이었다. 물론 그럴만한 엄청난 이유가 있었다. 부실채권 사건으로 그가 여태껏 쌓아온 명예와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성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 크기가 작아도 퇴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복된 실패의 경험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만, 반복된 성공의 경험은 나를 물렁하게 만든다. 성공가도를 달려오던 강제훈은 결국 그 한 번의 실패를 견뎌내지 못했다. <싱글라이더>는 삶의 이유, 혹은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다. 무엇이 진짜 행복인지,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고 삶에 임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다. 역시나 이것에 관해 정답은 없다. 누구나 자기만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자신에게 딱 맞는 인생.
<싱글라이더>의 연출은 훌륭했다. 명배우 이병헌은 적은 대사 속에서도 훌륭한 표정연기로 영화의 작품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왜 이병헌이 대중의 찬사를 받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영화였다. 그 외에도 공블리 ‘공효진’과 감초 ‘안소희’의 연기 또한 존재감이 있었다. 출연진이 많진 않지만 세 배우의 힘이 워낙 막강해 영화의 내실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싱글라이더>의 반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반전의 장면이 등장했는데도 나는 한참 동안 상황 파악을 하느라 시간을 썼다. 처음엔 ‘어, 이게 뭐지’ 하다가 잠시 뒤 ‘와, 대박’으로 반응이 바뀌었다. 반전의 내용은 아직 영화를 못 본 사람들이 있어 차마 밝히지 못하겠다. 이런 잔잔한 드라마 영화에 충격적인 반전이 숨겨져 있을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이주영 감독이 <싱글라이더>를 통해 말하고자 한 ‘행복한 인생’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삶 아니었을까. 호주에서 아내 이수진(공효진)의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한 강제훈은 단순히 그 사실만으로 그녀에게 화가 났다기보다, 그 옆자리에 자신이 있어주지 못한 데 대한, 자신을 향한 분노였을 것이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소중한 사람들을 다 내팽개치고 2년 동안 일만 했던 것일까, 하는 분노가 치밀었을 것이다.
<싱글라이더>는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영화다. 90분짜리 비교적 짧은 영화임에도, 그 속에는 인생이 모두 들어가 있다. 답답한 현실. 노력만으론 되지 않는 세상. 그럼에도 우리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건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 아닐까. 나는 영화를 보고, 내 곁을 지키는 소중한 사람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그들이 있는 덕분에 내가 지금껏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싱글라이더> 속 명대사
강제훈: 너무 좋은 것엔 항상 거짓이 있는 법이에요.
유진아: 새벽 5시에 버스 타보면요. 게을러서 가난하단 말, 진짜 다 개소리거든요.
<싱글라이더>를 아직 못 본 사람들에게
<싱글라이더>는 90분짜리 비교적 짧은 영화이지만, 확실히 가볍게 볼만한 영화는 아니다. 무거운 분위기며,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며,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다. 그럼에도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역시 세 배우의 ‘연기’에 있다. 개개인의 연기도 빛나지만, 세 명의 조합 또한 시너지를 발휘하기 충분했다. 확실히 볼만한 영화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2018.04.22.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