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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May 12. 2018

영화 <레미제라블>
타고난 운명은 있다

영화리뷰



영화 <레미제라블> 타고난 운명은 있다     



살다 보면 나약한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적인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불찰도 아니며 상대방의 고의도 아니다. 그저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운명에 놓였던 것. 현재 상태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면 일정 정도 다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몰라도, 개인의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즉 개인의 타고난 팔자를 거스를 수 있는 힘은 본래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불과 빵 한 조각 훔쳤을 뿐인데, 19년간의 노예 생활을 하고, 평생 동안 죄인의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 무척 억울하다. 물론 어떤 식으로든 범죄는 합리화될 수 없다. 그러나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써 한 사람의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뒤바뀐 경우 또한 적지 않을 터. 그 또한 그 사람의 운명이었을 테니, 어찌 보면 운명은 굉장히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불공평하다.      







그럼에도 영화 <레미제라블>의 장발장(휴 잭맨)은 타인에게 사랑을 주었다. 운명을 탓하고, 세상을 탓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것을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장발장이 ‘평생의 원수’ 자베르(러셀 크로우)를 용서하는 다소 비현실적인 면모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것에 있다.    



  




경쟁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비교’다. 대개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곪아터지게 만드는 주원인이 된다. 우리는 ‘성공’ 혹은 ‘생존’이란 이유로 그 ‘비교’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비교는 자신이 갖지 못한 걸 남이 가졌을 때 시작한다. 상대방이 나의 것을 빼앗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이다. ‘운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땐, 다만 주어진 게 다를 뿐이다. 내가 지닌 게 있듯 상대방도 지닌 게 있을 뿐인데, 우리는 상대방이 갖고 있는 것만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한다. 따지고 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영화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처럼 비루한 운명 속에서도 타인을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운명 탓만 하며 스스로의 몸과 정신을 썩게 내버려둘 수 없다. 반대로 주어진 현실을 무작정 긍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가진 것에 충분히 만족해하며, 소중한 사람들과 오랫동안 어울리고 싶다. 어찌 보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주어진 현실대로 산다는 건. 그건 자연의 순리와도 같다.      







궁합의 측면에서 봤을 땐,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은 내게 그다지 맞지 않았다. 모든 대사가 노래로 처리되어 전체적인 흐름이 깨지는 순간이 많았고, 아무래도 뮤지컬이다 보니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가 다소 과장돼 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뮤지컬영화 <라라랜드>는 무척 재밌게 보았었는데, 영화 <레미제라블>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아무래도 억지스러움보단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나로선 당연한 감상이었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아직 못 본 사람들에게     



영화 <레미제라블>은 러닝타임 2시간 반이 넘는 다소 긴 영화다. 중반부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으나, 그만큼 19세기 프랑스의 분위기를 제대로 엿볼 수 있다. 자유를 위해 프랑스의 민중뿐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목숨 바쳐 싸웠는지, 특히 재작년 촛불혁명을 거친 우리들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상기시켜주는 영화다.    



  

# 지금까지 영화 <레미제라블>의 골때리는 리뷰였습니다          




2018.05.12.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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