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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Jun 15. 2018

힐링에세이 <계절성 남자>
미니멀리스트의 에세이란



인생이 계획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누구나 십 대 땐 좋은 대학을 꿈꾸고, 이십 대 땐 안정된 직장을 꿈꾸고, 삼십 대 땐 화목한 가정생활을 꿈꾸지만, 알다시피 삶의 길은 꿈꾼 대로 흐르지 않는다. 여기, 그 진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사람이 있다. 실명인지 익명인지도 알 수 없는 ‘이만근’이라는 남자. ‘무엇이 되기 위해 꿈꾸지 않았다’던 말처럼 그의 삶은 바람 따라 물결 따라 그대로 흘러갔다. ‘잡지사 기자’였다가 ‘중국요리점 매니저’가 되기도 했던, 그의 정처 없는 삶이 타자의 눈엔 그저 불안정해 보일지 몰라도, 아마 저 스스로는 굉장히 안정된 삶을 누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그의 담백한 글에서 나 역시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 5월 16일 출판된 힐링에세이 <계절성 남자> 책리뷰           





힐링포인트.

그의 글에는 전후사정이 없다. 딱 최소한의 말만 꺼낸다. 흰 종이 위에 ‘어부바’란 단어만 자리한 채 황량한 공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의 속마음이 너무 갑작스럽게 튀어나와서 감정 이입을 하기도 전에 그 마침표가 찍혔다. 읽는 사람으로선 굉장히 당혹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그게 썩 나쁘지만은 않다. 그는 애초부터 그런 염려는 하지 않은 것 같다. 마치 읽든지 말든지 하는 ‘츤데레’ 같은 느낌. 그런데 작가의 글이 불친절하든 말든 나는 상관없다. 오히려, 나 역시도 글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 정확히는 글의 공백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으니까 좋았다. 참 모순적인 말이긴 하나, 나는 그 공백에 더 마음이 갔다. 글보다 하얀 공백에 더 위로를 받았다. 작가 ‘이만근’은 그걸 노린 거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작가에게 좀 미안해지는데.      



‘여기 밥집은 혼자 오는 손님을 더 잘 챙겨요. 그래도 물은 셀프.’

그는 일상의 조각을 떼어 하얀 종이 위에 붙였다. 별 의미 없는, 지극히 사소한 일상이라 읽는 사람으로선 당혹스럽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데서 웃음이 툭하고 터졌다. 이 식당이 뭘 파는 식당인지, 손님을 어떻게 잘 챙겨주는지는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그저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고집스럽게 써내려갔다. 그러니까 나는 그게 더 좋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다. 따듯한 온기 하나만큼은 지독하게 잘 전해졌으니까.        


   



미니멀리스트의 삶.

꼭 가진 걸 버려야만 미니멀리스트로 인정받는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미니멀리스트는 가진 걸 무작정 버리는 삶이 아니라 확고한 하나의 가치를 지향하는 삶이라 생각한다. 그럼 <계절성 남자>의 이만근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미니멀리스트로서 삶을 산 것일까. 그에 대한 내용은 책에 언급돼 있지 않지만, 분명 자신만의 가치는 존재했을 것이다.           





<계절성 남자> 속 좋은 글.





돈이 많고 적음을 따져 사람 가리는 것보다, 하여튼 남의 시간 우습게 여기는 놈들이 가장 싫습니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알게 되면 끔찍합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속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이 되었습니다.     





여태 만나지 못한 걸 보면 내 짝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나 봐요.     





사기꾼을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은 사기를 당해보는 것뿐인데, 하물며 사랑은.     





누군가에게 미안해지는 일이 자주 생기다 보면 어느 때부터는 그 사람이 싫어져 피하게 되더군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사람은 미안할수록 멀어집니다.     





생각은 끙끙대며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멍하게 있다 보면 생각이 슬그머니 들어오잖아요. ‘멍’이라는 덫을 놓고 기다려봐야죠. 나는 생각의 주인이 아니요, 생각은 주인 없는 집에 찾아온 손님이니.     





여행길에서 만난 연인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절정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설픈 위로보단.

요즘 시중에는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시집이 유독 많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에는 항상 그러한 책들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위로를 위한’ 위로에 별 공감을 하지 못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어설픈 위로는 원래 약효가 덜한 법이다. 당신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면,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사람의 글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계절성 남자>가 바로 그런 책이니까. 이만근의 글은, 억지로 우리를 위로하려 들진 않지만, 툭하고 내뱉는 말이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짧은 글 밑에 자리한 넓은 공백에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었다. 사람의 향이 나는 책이랄까.           



# 본 리뷰는 유상지원을 받고 작성한 글입니다




2018.06.15.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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