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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Jun 23. 2018

웹툰 원작 영화 <여중생A>
슬플 땐 울어도 괜찮아

영화리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극장가를 꾸준하게 두드리고 있다. 작년 주호민 작가의 <신과함께>가 그 절정을 찍으면서 앞으로도 인기 웹툰에 대한 영화계의 러브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6월 20일 개봉한 <여중생A> 또한 웹툰을 원작으로 둔 성장영화다. 원작의 작가 ‘허5파6’이 2015년 2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연재한 인기 웹툰이다. '허5파6'은 청소년기에 흔히 겪을 만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세심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그런 디테일이 영화 <여중생A>에도 잘 녹아들어 우리들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영화 <여중생A>는 음식으로 따지면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삼계탕’과도 같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영화들 사이에서 홀로 그 담백한 맛을 지키고 있다. 어떠한 조미료도 첨가되지 않아 관람하기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그냥 가벼운 마음을 먹고서 옛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을 진정시키기 딱 좋았다. 진정한 힐링 영화라 하면 바로 이런 영화를 두고 말하는 거 아닐까. 최근 <더 테이블>,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잔잔한 힐링 영화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유의미한 일이었다. 그만큼 우리들이 지쳤다는 뜻이니까. 나는 그런 담백한 영화들이 더없이 반가웠다.          





# 순수함. 선함.

짝사랑하는 태양(유재상)에게 말 한 번 붙이는 게 떨리고 설레는 미래(김환희). 그리고 자신의 소설을 베꼈으면서도 진심으로 백합(정다빈)을 용서해주는 미래.      



정말 티 없이 맑은 미래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데 ‘그렇게 착한 행동만 해서는 당하고 산다’란 생각부터 드는 게, 이미 나는 순수함과 선함을 많이 잃어버린 '어른'이 된 것 같다. 사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다. 아마 옳고 그름 자체가 없겠지. 모든 행동은 그에 따라 자신이 책임지면 되는 거였다. 적당한 요령과 적당한 순수함을 간직한 채 삶을 영위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적당함’은 신이 아닌 이상 갖기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순수함’을 잃어버린, 영락없는 ‘어른’이 되어가는 건, 왠지 어린 시절 그토록 증오하던 ‘꼰대’의 표본이 되는 것 같아 싫었다. 미래는 그런 과정 속에 서 있는 나에게 적잖은 자극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여중생A>는 내게 충분히 유의미했다.          





# 진짜 친구란.

친구란 무엇일까. 일률적으로 친구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의미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저마다 나름대로의 정의는 가슴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란 무엇인지. 그 나름대로의 정의가 서로 맞는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거였다.      



그럼 미래의 친구는 누구였을까. ‘희나(김준면)’였을까. 아니면 ‘백합’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희나’였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친구 관계에 있어 나이 차이는 중요치 않았다. 희나와 미래는 처한 처지와 현실이 서로 비슷했다. 둘 다 친구가 없었고, 자살을 계획했고,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것이 그 둘을 연결 짓는 강한 유대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던 거였다.      



영화 <여중생A>는 현재 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 혹은 과거엔 친했지만 여러 이유로 현재 멀어진 친구를 떠올리며, 친구의 의미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연인보다 학창시절을 함께했던 친한 친구와 같이 보면 더 좋은 영화다. 오랜만에 ‘추억팔이’나 하면서 옛 향수에 잠기는 것도 기분 전환을 위해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          





# 미래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같은 반 친구들의 따돌림, 아버지의 학대, 친구 없는 외로움 등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어린 미래가 끝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그녀만의 공간인 ‘도서실’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학창시절 도서실을 찾는 학생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나 역시도 도서실에 들어가 본 기억이 희미하다. 그런 고독한 공간을 미래는 ‘자기만의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그곳에서 그녀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휴식을 찾았다. 교실에서도, 집에서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었던 미래는 유일하게 도서실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것이 바로 미래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그러한 공간이 있는가.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을, 우리는 모두 소유하고 있는가.      


주위에 찾아보면 일명 ‘치타델레’(독립적인 나만의 공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치타델레는 온라인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한다. 혼자서 가만히 있는 것을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여긴다. 사실 그게 더없이 중요한데.          





# 슬플 땐 울어도 괜찮아-희나

힘들고 슬퍼도 꾹꾹 참는 어린 미래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도 그랬다. 참고 견디는 것이 어른이라며 힘들어도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다 한들 힘든 게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 슬픔이 해소되지 못한 채 그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곪아가고 있었다.    


  

영화 막판 미래가 슬프게 우는 장면에서 우리는 위안을 받았다. 그래, 슬플 땐 울어도 괜찮다며 어린 그녀가 몸소 시범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슬프면 울어도 된다. 그건 철이 없는 게 아니다. 그렇게 우리를 다독여주었다.   


   

누구나 공감하고, 한 번쯤 겪어봤을 만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여중생A>는 현재 절찬 상영 중이다.     


 


2018.06.23.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

# 브런치 <무비 패스>의 지원을 받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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