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세이
삶이 팍팍해질수록 서점가엔 위로의 글을 담은 책들이 쌓여간다. 요즘 서점의 풍경이 그렇다. 베스트셀러를 모아둔 공간의 상당 부분이 그러한 책들로 들어차 있다. 그만큼 현재 우리의 삶이, 책 한 줄의 위로를 빌려야 할 정도로, 지쳤다는 방증이다.
한데 그러한 책을 읽어 보면, 소위 ‘허접한’ 책이 너무 많다. 위로의 탈을 쓴 채 그저 어쭙잖은 말만 지껄이고, 진심은 온데간데없고, 그럴듯한 말로만 치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거짓 위로’를 독자들이 모를 리 없다. 나는 솔직히 ‘위로’를 표방한 대부분의 책이, ‘진짜 위로’ 없는, 위로를 위한 위로의 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앙꼬 있는 위로에세이는 정말 몇 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일본에세이 <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이 반갑다. 이 책에는 작가의 진심이 듬뿍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진심이 독자들에게 전해져 마음속 위로로 번진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위로하는 사람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본디 위로하는 사람이라면 다가가는 데 조심스러워야 하고, 상대방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낄 줄 알아야 하는데, 작가 우미하라 준코는 심료내과 전문의답게 공감 능력의 탁월함을 보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이완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국가는 달라도, 그녀가 전하는 진심은 국적과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전해졌다. -2018년 5월 25일 출간된 일본에세이 <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 책리뷰
위로는 단순히, ‘너를 위로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아이야’라고 아무리 말한들, 그 액면만 받아들였을 땐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요즘 인기를 타는 위로에세이의 전형이 그런 것 같아 안타깝다. 작가 본인은 글 뒤에 꽁꽁 숨은 채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꼴이 가식적이다.
독자가 책에서 위로를 받는 포인트는, 작가도 내가 겪은 일을 겪고, 내가 느낀 감정을 느꼈을 때다. 그의 이야기가 꼭 내 이야기 같을 때, 독자는 진한 위로를 받는다.
<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과 다른 위로에세이와의 차별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는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쓰고, 실제로 생활을 하면서 느낀 감정을 가감 없이 적는다. 거기에 내 일상도 있고, 내 감정도 있다. 작가의 소소한 일상에서 우리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위로이며, 작가의 진정성이다.
테러와 지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시간과 장소가 어긋났더라면 직접 겪었을지도 모를 위기를 피해가며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아무것도 특별히 달라진 것 없는 하루가 행복”이라는 아버지의 말이 기억 위로 떠올랐다.
그 나이 때만 즐길 수 있는 것, 그 사람이 그때밖에 할 수 없는 것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때 즐겼던 것들 중에는 나이가 들면서 시들해지는 것도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젊을 때와 똑같은 것을 즐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것은 벚꽃이 1년 내내 피어있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불가능한 바람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느라 ‘어떻게 하면 잘 살까’ 하는 문제를 내팽개치는 경향이 있다.
고양이처럼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 수는 없겠지만, 늘 ‘잘나가는’ 내가 아니어도 좋다는 자세는 꼭 필요하다.
무엇이든 당연하고 언제까지나 계속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은 오만해진다. 그러나 자연이 아주 조금만 밸러스를 잃어도 인간의 생활은 쉽게 무너진다. 일터에 일하는 사람이 있고 집에 가족이 있어야 비로소 저녁노을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 지금 함께 있는 사람과의 한때를 소중히 해야 한다.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는 처리하지 못하고 넘긴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남기 때문에 싫은 일이라도 떠올리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반복되는 분노를 해소하려면 그 감정을 대충 얼버무릴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정리하여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 감정을 억눌러 무마하기보다 분노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카무라 신민의 ‘무딘 칼’
무딘 칼이란 잘 안 드는 칼이다.
아무리 갈아도 빛나지 않는다.
그런 칼 갈아봐야 소용없다고 하지만 귀 기울이지 않는다.
칼은 빛나지 않더라도 칼을 간 내 자신이 빛나기 시작하니까.
‘재능이 없으니까.’라고 생각하지 말고 근근이라도 계속한다.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말이다.
‘아무것도 특별히 달라진 것 없는 하루가 행복’
사실 하나의 글귀만 마음속에 담을 수 있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다. 하나의 글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에서 나는, 위의 글귀를 얻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글귀라 생각하지만, 나로선 충격에 가까운 글귀였다.
나는 지금의 일상을 굉장히 소중히 생각한다. 건강한 나, 건강한 가족, 편안한 집, 하고 싶은 게 있는 하루. 하나같이 조금이라도 틀어지기 겁나는 것들이다. 행복이 별게 아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어제와 별 다를 바 없이 유지되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그런 평소의 생각을 작가가 글로 정확히 짚어줘 마음속 작은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위로를 받고 싶다면 <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을 추천한다.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안정된다.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고 편안해지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담백한 글귀, 자극적이지 않은 단어, 유독 눈에 띄는 책의 공백. 위로의 조건으로 충분하다.
# 본 리뷰는 [니케북스]의 무상지원을 받고 작성한 글입니다
2018.06.30.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