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이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다. 누구보다 글쓴이가 감정을 풍부하게 받아들여야 글의 표현도 그만큼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그렇다. 어떤 일에도 큰 감정 동요가 없는 나로선 글 소재 찾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뭘 느껴야 쓰지! 글을 쓰고 싶은 욕구는 누구보다 강한데 쓸 게 없다는 안타까운 아이러니. 그런데 찬찬히 찾아보면 내게도 글의 소재가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산다>에서 조금이나마 찾은 기분이다.
<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산다>의 저자 이유미도 나만큼 무던하고 무감각한 사람 같다. 그녀의 이야기엔 특별함이 없다.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다. 남편, 아이, 엄마, 회사가 이야기의 대부분이다. 한데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해서 특별하지 않은 글은 아니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일상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것도 그녀만의 능력이고, 그러한 이야기들이 모이면 그 자체로 특별함을 내뿜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무언가 무던한 정용하는 무던한 이유미를 닮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마음 갔던 것일지 모른다. -2018년 7월 25일 출간된 <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산다> 책리뷰.
작가는 어쩌면 남들보다 쉬운 인생을 살았는지 모른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나도 그렇다. 자잘한 사건들은 그간 꽤 있었지만 대체로 큰 굴곡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것 없이, 제대로 된 연애 해본 적 없이 색깔로 따지면 무채색에 가깝게 살아왔다. 그래서 더 남들보다 쉬운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게 다 부모님 덕분. 경제적으로 아쉬웠던 적이 없고, 대체로 안락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주신 덕분에 큰 고비 없이 자랄 수 있었다.
작가는 ‘방콕’을 사랑하는 ‘귀차니즘’ 종결자다. 집에서 쉬는 걸 굉장히 즐긴다. 아이가 생긴 뒤로 그럴 시간이 줄어들어 무척 아쉬워하기도 했다. 나 또한 (‘귀차니즘’까진 아니지만) 둘째가라면 아쉬운 ‘방콕러’다. 이건 엄마의 영향이기도 한데 (엄마는 아니라고 극도로 부정한다), 주말에 집 밖 안 나가고 거실에 누워 TV를 보다 스르르 잠드는 편안한 시간을 아주 좋아한다. 그것을 엄마와 같이 하면 더 좋다. 마치 고속충전기를 내 몸에 꽂은 기분.
마지막으로 작가의 결혼관. 작가는 자신이 결혼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러다 잘 맞는 한 남자를 만나고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흘러갔다고 한다. 자신의 온 모습을 사랑해줄 것 같은 신뢰가 생겼을 때 결혼에 대한 확신이 섰다고. 그것을 그녀는 책 읽는 자신을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고 느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책 읽는 취미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차분히 기다려주고 자기 할 거 하는 모습 보고 이 남자다 싶었다고 한다. 나는 남자지만 나도 이런 연애를 해보고 싶다. 만나서 내가 책을 읽어도 서운해 하지 않고 자기 할 거 하는 여자. 무얼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그 공간의 편안함에 위로를 받는 연애. 아-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인가.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작가와 나는 관계관도 닮아 있다. 나는 늘 인맥이 넓고 모임에서 사랑 받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그렇게 되어보고자 무진장 애써 보기도 했다. 연락도 먼저 틈날 때마다 하고, 먼저 약속을 잡고, 자주 챙겨주는 등. 몸은 피로했지만 실제 인맥이 넓어지고 나를 찾는 연락이 많아지긴 했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꽤나 즐기는 편이기도 했다. 그러나 탈이 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심신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들더니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어느 순간 나를 덮쳤다. 결과는 모든 관계 절단이란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사람마다 맞는 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걸 그 당시엔 알지 못했다. 작가의 말처럼 인맥이 넓기 위해선 그만큼 부지런해야 했다. 싫은 모임도 나가야 하고 자신의 피로도보다 그들과의 관계를 우선시해야 한다. 아- 나는 그딴 거 못 하겠다. 나를 버려가면서까지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는 일. 차라리 그 관계를 포기하는 쪽을 택하겠다. 그러니까 나는 마당발 따위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이 많고 친구가 많다는 건 그 사람이 굉장히 부지런하단 뜻이기도 하다. 어찌 됐건 인맥이란 만남을 비롯해야 벌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에 나가기 싫은 모임과 약속도 어기지 않고 반드시 챙겨야 한다. 자신의 피로도보다 그들과의 관계가 우선인 것이다.
약속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취소가 되면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 무릇 나는 혼자 있는 게 가장 편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이나 동료를 만나면 재미는 있지만 알게 모르게 나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걸 느끼면서 피곤이 몰려온다.
누구에게나 맞는 옷이 있듯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선은 내가 즐거워야 한다. 사람 만나는 게 불편하고 언짢은데 거기서 괜찮은 관계가 싹트기는 힘들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가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자신의 리듬에 맞게 살면 된다. 바쁘게 사는 사람을 보며 내가 그러지 못함에 대해 안절부절할 것 없다. 나답게 살면 그만이다. 잘 안 되는 것에 애쓰지 말지어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걸 실감한다. 어렸을 땐 내가 꿈꾸는 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말 그대로 꿈에 불과했다. 현실은 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완전히 없진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세상 일 중 팔 할이 내가 하기 싫은 일이라면 이 할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공부가 팔이라면 취미가 이, 회사 일이 팔이라면 여가가 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그래, 인생의 이 할만이라도 나만의 삶을 살자. 그럴 수만 있다면 꽤 행복한 삶일 것만 같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에세이 <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산다>. 여러분들에게 살포시 권해본다.
# 본 리뷰는 [흐름출판]의 무상지원을 받고 작성한 글입니다
2018.08.16.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