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건지 알지 못한다. 디즈니월드 건너편에 위치한 모텔 ‘매직캐슬’에는 왜 그토록 많은 장기투숙자가 몰렸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핼리(브리아 비나이트)는 어쩌다 미혼모가 되어 이곳까지 흘러 들어왔는지, 왜 아무 일도 구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영화가 안겨준 따듯한 여운은 다 알 필요 없다며 나를 토닥여주었다. 영화의 메시지는 이해하지 못했어도 인물 간 관계 속에서 나는 많은 고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이 제대로 된 삶일까.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내게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2018년 3월 7일 국내 개봉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션 베이커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뉴욕타임즈 올해의 영화 No.1'에 뽑히기도 한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귀여움과 놀라움을 독차지한 무니 역의 ’브루클린 프린스‘는 무려 6살이란 나이로 제 23회 크리스팅 초이스 시상식에서 역대 최연소 아역배우 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연기는 말이 필요 없는 호연이었다. 6살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녀의 끼와 매력을 지켜보는 것도 이 영화의 볼거리라 할 수 있겠다. -2018년 3월 7일 개봉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후기.
사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줄거리라 할 게 따로 없다. 영화는 특별한 스토리 없이 ‘매직캐슬’에 사는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을 조명한다. 그러나 겉으론 잔잔해 보여도 매직캐슬은 바람 잘 날이 없다. 매직캐슬의 아이들 무니와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 근처 모텔 ‘퓨처랜드’의 젠시 등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기행들로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터지기 때문이다. 그 정점이 바로 건물 한 채를 통째로 불태워버린 일인데 그 후로 여러 관계가 변화를 맞이한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 중 하나가 든든한 모텔 관리인 ‘바비’이다. 전형적인 ‘츤데레’ 스타일의 중년 남성으로 말이 굉장히 딱딱하고 고지식하지만,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거주하는 사람들을 알뜰살뜰 챙기는 따듯한 남자다.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왠지 든든하고 힘을 얻는다. 아마 여러분들도 같은 느낌을 받을 거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신작 <어느 가족>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두 작품 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목한 가정이란 무엇을 말하고 누가 그것을 정의 내리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어느 가족>이 피를 나눠야만 가족이 되는지 물었다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미혼모에 마땅한 거주지가 없다고 해서 불행한 가족이라고 판단내릴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여건이 열악한 가정을 구제하는 정책이 꼭 그들을 위한 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지 문제의식을 품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불행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두 작품 다 결론이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션 베이커 감독 모두 특정 결론을 내리기보다 관객을 향해 특정 물음을 던지기 위한 목적이 더 커 보인다. 그런 점에서도 두 작품은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어느 가족>의 ‘만비키 가족’은 상습적인 절도와 시신 유기를 했다. 그리고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핼리는 매춘을 했다. 둘 다 죄질로 따지면 우열을 가를 수 없는 중범죄를 저질렀다. 그리고서 가족은 해체됐다. (물론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결말에서는 무니와 핼리 가정이 완전히 해체되었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만비키 가족’의 해체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해체되지 않고 가족의 형태를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대로 ‘무니 핼리 가족’은 하루라도 빨리 해체되기를 바랐다. 정확히는 그들이 하루 빨리 국가의 지원을 받기를 바랐다.
이유는 모르겠다. 왜 ‘만비키 가족’의 해체가 더욱 아쉽게 느껴졌는지. 가족 내부적인 행복으로만 따진다면 두 가족 다 구성원들끼리 아낌없이 사랑을 나눴다. 서로가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만비키 가족’이 가족 형태로 봤을 때 훨씬 안정적이고 완전한 구조를 갖췄다. 멀쩡한 부모(?)와 예쁜 이모, 사랑스런 형제가 존재했다. 세상을 등지긴 했지만 그 위에 할머니도 있었다. 반면에 ‘무니 핼리 가족’은 가족 형태가 불완전했다. 위태로워 보였다.
적어도 ‘만비키 가족’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다. 이것을 논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둘 다 중범죄를 저질렀다. 그래도 심정적으로 ‘만비키 가족’이 더 끌렸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무니 핼리 가족’은, 그들은 즐거웠을지 몰라도 타인들에게 너무 많은 피해를 안겨주었다. 이웃 차에 침 뱉기서부터 모텔 정전시키기, 고성방가, 숙소 안에서의 매춘 등 하나같이 남들에게 큰 피해가 가는 것들이었다. 그런 점이 영화를 보는 동안 다소 불편했다. 무니나 스쿠티가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최대한 삼가도록 훈육했어야 했다.
‘무니 핼리 가족’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번번한 직장도 없고 뒷바라지 해줄 다른 피붙이도 없는 그들의 삶이 마냥 절망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현실에 굴하지 않았다.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당당했다. 그들은 어딜 가도 잘 적응했을 것이다. 6살짜리 무니에게 그런 점을 배우고 싶다. 언제든 주어진 현실을 십분 즐기는 무니의 모습은 본받을 만했다.
2018.09.05.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