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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Jan 11. 2019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후기

영화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해 개봉한 <어느 가족>이 처음이었고, 그 이후에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집에서 보았다. 세 작품 다 한 감독의 작품이다 보니 역시 일관적인 분위기가 흘렀는데 그 특유의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눈에 띄었던 점은 세 영화에 전부 출연했던 두 배우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키키 키린과 릴리 프랭키가 그 주인공인데 그들은 세 영화에서 주연과 조연을 넘나들며 활약했다.


      

평소 잔잔한 영화를 좋아했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영화에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헤어날 수가 없다. <어느 가족>부터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까지 총 세 편을 보았는데 하나같이 명작이었다. 가족이란 큰 테마의 다양한 세부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따듯함이 한 가득 품에 안긴다.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영화를 찾고 있었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 <태풍이 지나가고> 스토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특징은 특별한 스토리가 없다는 점이다. 그저 일상 속 단면을 보여주는 것처럼 큰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감독은 몰입도 있게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지닌 가장 뛰어난 장점이 아닌가 싶다. <태풍이 지나가고>도 특별한 스토리 없이 흘러가는데 그런데도 굉장히 몰입도 있었다. 물론 자극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마저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무명 소설가이자 흥신소 직원이었다. 자신의 꿈만 고집하다 현실적인 부분을 챙기지 못했다. 그의 경제적인 능력과 가정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가정은 파탄난다. 이혼한 뒤에도 양육비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못할 만큼 무능력한 아버지다. 그러면서 부성애는 지극하여 어떻게든 돈을 벌려 하지만 마땅치 않다. 결국 어머니의 돈을 어떻게든 빼내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연금 받는 어머니의 사정 또한 마땅치 않을뿐더러 있는 것도 누나(고바야시 사토미)가 이미 가로채 갔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료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태풍이 지나가고> 연출.

이전에 보았던 <어느 가족>, <바닷마을 다이어리>과 마찬가지로 <태풍이 지나가고>의 현실적인 연출력이 인상적이다. 출연 배우부터 그들의 의상까지 평범한 일본인처럼 보이고자 애쓴 흔적이 많다. 그런 노력이 영화 몰입도를 높이는 데 이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훌륭한 감독이라는 것은 사소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챙긴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일상의 단면을 표현하고 싶다 해서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은 보통 능력이 아니다. 대부분 과한 욕심으로 디테일한 부분에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떤 영화든 완벽하게 일상의 단면을 포착하고 구현해낸다.     



감독은 태풍이란 장치를 마련하여 한 인간의, 한 가족의 전환점을 마련해 놓았다. 그것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열린 결말로 두어 관객이 마음껏 상상하게끔 했는데 그것이 어떤 것이든 세 사람(료타, 싱고(요시자와 타이요), 쿄코(마키 요코))에게 큰 영향을 끼칠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료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건 그런 것 같다. 한 인간의 삶은 사소한 데서 큰 영향을 받는다, 는 것.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않나. 돌이켜 보면 누굴 만났고, 어떤 자리에 나갔는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까 더더욱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하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보면 료타가 현실에 가장 집중했던 순간은 태풍이 몰아닥치던 밤이었다. 그렇게 집중하고 나니까 소중함도 깨닫고 현실 자각도 하게 되는 것이었다.     


       



# <태풍이 지나가고> 배우.

앞서 말한 것처럼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 단골로 등장한 배우가 있다. 키키 키린과 릴리 프랭키인데 그들은 어떤 영화에서든 자신의 연기력을 십분 발휘한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란 나는 원래 그 배우의 이미지가 완전히 잊히고 맡은 역할만 받아들이게 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송강호나 유해진 같은 배우를 보면 어떤 느낌인지 딱 와닿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태풍이 지나가고>에 나온 배우들은 하나같이 그 배역에 몰입하여 연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무능력한 아버지 료타 역을 맡은 아베 히로시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그의 연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배우인데, 큰 키와 탄탄한 몸매가 말해주듯 모델 출신이라고 한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스토리, 연출, 배우까지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남을 때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자신한다.       


    



#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고 떠올린 생각.

료타라고 해서 그런 무능력한 어른이 되고 싶었겠는가. ‘쉽게 원하는 어른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그의 말처럼 머릿속으로 그리던 어른이 되는 건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나는 특히 그 대사가 마음에 남았는데 지금 내 신세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십 대 후반이 되면 그래도 안정적인 자리 하나 차지할 줄 알았는데, 차근차근 기반을 쌓아갈 줄 알았는데, 그냥 아무 능력 없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언제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내 능력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세상을 너무 얕잡아 보았다. 아무 직장도 얻지 못한 채 방황하는 모습을 전에 단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이 나의 인생인 것을. 힘든 와중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료타의 모습에서 나도 힘을 얻었다. 어떻게든 살게 되겠지.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겠지. 그런 대로 지금의 조건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다. 




2019.01.11.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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