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주목은 받고 있지 못하지만 소리 없는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 그린북이다. 1월 9일 개봉 이후 꾸준히 예매율 상위권에 오르며 입소문을 쌓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영화인데 제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각본상(닉 발레롱가 외 2명), 남우조연상(마허샬라 알리), 작품상(피터 패럴리)을 차지한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아케데미 시상식이나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한 영화는 작품성과 대중성이 동시에 갖추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앞으로 큰 흥행은 쉽지 않겠으나 꾸준히 관객을 끌어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 그린북은 진한 감동을 남기는 영화다. 보고 나면 뜨거운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를 것이다. 동시에 현시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지금도 불만족스런 것이 천지긴 하나 억압과 폭력이 성행했던 옛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잔잔하고 스토리 라인이 괜찮은 영화를 찾고 있다면 나는 곧바로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솔직히 작품성만 따진다면 현재 상영작 중 이 영화가 가장 괜찮을 것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스토리, 연출, 배우를 다룬 영화 그린북 후기 시작해보도록 하자.
영화는 1960년대 미국 풍경을 담고 있다. 당시 미국은 인종 차별이 극으로 달하던 때다. 버스, 레스토랑, 숙소 등 흑인과 백인 전용을 따로 두어 버젓이 차별이 자행됐다. 마틴 루터 킹이 활동하던 때도 바로 이 시기고, 인종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존 F. 케네디도 이 시대 인물이다. 영화 그린북은 그 시대적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세세하게 담고 있다.
허풍과 주먹만 믿고 한 평생을 살아온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일하던 클럽이 새 단장에 들어가기 위해 휴업에 돌입하자 잠시 동안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알아본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제의가 들어오는데 바로 당대 천재 뮤지션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의 운전기사였다. 토니는 고민 끝에 고수입에 이끌려 제의를 받아들이고 돈 셜리와 두 달간 미국 남부 투어를 떠난다.
다혈질에 주먹이 먼저 나가는 토니와 완벽한 바른 생활을 영위하는 돈 셜리는 다니는 내내 여러 마찰을 빚는데 조금씩 서로의 방식에 맞추어 간다. 그런 그들이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은 관람 포인트다. 중간 중간 돈 셜리가 인종차별을 당하는 모습도 나오는데 이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큰 틀의 스토리는 이렇다.
영화 막바지에 둘이 크리스마스를 함께하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다. 틀을 깬 돈 셜리와 품격을 찾은 토니. 서로 달라도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이를 보며 느낀 것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만 진정한 우정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완벽한 파트너였고,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실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1960년대 미국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몰라 그 시대 연출이 잘 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딱 보기에도 어색한 장면은 없어 연출이 잘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출을 맡은 피터 패럴리는 코미디 장르의 대가로, 대표작으로는 1994년 <덤 앤 더머>, 2001년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등이 있다. 제작한 것을 보면 최근까지도 코미디 물이 많은데 드라마 장르의 <그린북>도 훌륭하게 연출해냈다.
잔잔한 드라마 장르여서 호불호가 다소 갈릴 수도 있는 영화인데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은 영화여서 누구나 즐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초반 도입부 부분만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고 중반부로 흐를수록 점점 몰입이 되었다. 아무래도 잔잔한 흐름이라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인종차별이 자행되는 상황에 지루할 틈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고,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그린북 주연을 맡은 비고 모텐슨이 알고 보니 ‘세기의 명작’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아라곤’이었다. 그 영화가 나온 것이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어느새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토록 멋있었던 아라곤이 어느덧 배 나온 중년의 남자가 되었을 줄이야.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지금 모습도 충분히 카리스마 넘쳤다. 그러나 <그린북>에 나온 모습을 보고 나는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집 와서 확인했다. 조금 놀랐다. 토니가 아라곤이었다니. 그래도 멋있는 건 변함없었다. 돈 샬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는 모습은 아라곤 때와 다르지 않았다.
또 다른 주연 마허샬라 알리도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배우다. 명작 <문라이트>에서 후안 역으로 출연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제 89회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헝거게임> 등에 출연했고,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애런 데이비스 목소리 역을 맡기도 했다. 2월 개봉예정작 <알리타: 배틀 엔젤>에서도 주연을 맡아 활약을 예고했으니 기대가 된다.
최고의 배우 둘이 함께한 만큼 <그린북>에서도 케미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들의 호연 덕분에 영화가 더욱 살았던 것 같다. 실제 그들의 나이 차는 16살(비고 모텐슨이 58년생, 마허샬라 알리가 74년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둘의 케미는 돋보였다.
우리라고 해서 인종차별 문제와 멀기만 할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문화 가정, 동남아시아 사람, 흑인에 대한 우리 태도와 생각이 크게 드러나진 않더라도 알게 모르게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민족 한 핏줄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타민족 타인종에 대해 차별적 시선이 없을 리 없다. 그런 점에 봤을 때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에 분개할 자격이 없다. 우리부터 잘해야지, 우리부터라도 차별 없는 문화를 만들어야지, 할 말이 생기는 것이다.
꼭 인종차별만 차별이 아니다. 요즘 화두인 남녀차별 문제도 있고, 학교 성적에 따른 차별, 경제 수준에 따른 차별 등 유형은 다양하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오랫동안 이어져온 문제이고, 문화 수용 없이 지금까지 흘러왔다.
차별을 없애려면 간단하다. 나와 다르더라도 내버려 두는 것. 그들이 법 테두리 안에서만 논다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는 것. 통합이라 해서 차별 받는 그들이 대부분의 사람과 똑같이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류든 비주류든 삶의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해법이 간단하다 해서 적용마저 쉬운 것은 아니다. 차별이란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고 오랜 역사 동안 함께 해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향만큼은 서로 함께 사는 방향이었으면. 오래 걸려도 차별을 없애는 방식이기를 소망한다.
2019.01.15.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