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화 인문학 토크쇼’ JTBC <방구석 1열> 39회에 소개됐던 영화다. 채널을 돌려보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보자마자 깊이 빠져들었다. 영화가 지적하는 지점이 참 공감됐다. MC와 패널들이 나누는 이야기도 굉장히 심도 있고 풍성했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그 여운이 사그라들지 않자 나는 곧바로 영화를 결제해 시청했다. 방송의 영향 때문인지 네이버 VOD 구매 순위에도 상위권에 올라 있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로 국내에는 2016년 12월 8일 개봉했다. 국내에서는 9만 7천여 명 정도밖에 끌어 모으지 못했다. 화제성 면에서도 크게 두드러지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꼭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지만 우리와 밀접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관객 수가 꼭 그 영화의 작품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는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 시민의 이야기, 부유하진 않지만 인간적인 감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를 본 뒤 <방구석 1열> 39회를 참고하는 것도 영화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보지 못했던 부분을 깨우치게 되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에는 맞장구를 치게 될 것이다. 분명 여러 면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영화이다. 한편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단에 스낵 영상과 영화 예고편을 올려둘 테니 참고하기 바란다.
영화는 통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고구마 백 개는 먹은 것 마냥 텁텁해진다. 일부러 골탕 먹일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시작 때 얻은 이 감정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어진다. 슬프다가 화가 나고, 답답하면서 눈물이 났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심장질환으로 평생 해오던 목수 일을 못 하게 된다. 그래서 전문의 소견에 따라 질병 수당을 받으려고 신청을 하는데 당국은 이해할 수 없는 기준을 들이밀며 그를 탈락시킨다. 이를 따지려고 주민센터에 가지만 공무원은 절차적인 것만 강조하며 민원해소에 소극적인 행태를 보인다. 평생 인터넷 한 번 이용한 적 없는 다니엘에게 모든 신청은 인터넷을 통해 하라는 원칙만 앞세운다. 그에 다니엘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시민들에게는 어떠한 배려도 없느냐며 분개한다.
이것은 하나의 일화에 불과하다. 공무원들은 다양한 잣대를 들이밀며 수당 수령을 어렵게 만든다. 마치 정당한 수당 수령이 불법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방구석 1열>의 윤종신이 이를 보고 한 말이 생각난다. “수당을 받으려는 10명 중 자격이 의심되는 한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만든 제도가 꼭 필요한 9명이 못 받게끔 만들어버린 것 같다” 이는 비단 먼 나라 영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행정 편의주의가 흔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이 옳은 일인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말이 너무 안타깝게 끝났다. 오래 애먹은 끝에 다니엘은 결국 수당 수령 직전까지 가는데 심장질환이 다시 도지면서 안타깝게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의 죽음이 많은 사람에게 경종을 울렸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공권력의 사용, 혹은 행정 편의주의가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을 벼랑 끝에 내몰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비단 공권력뿐 아니라 개인이 행하는 모든 일이 그렇다. 끊임없이 본질이 무엇인지 되새기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휘둘리거나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연출은 켄 로치 감독이 맡았다. 1936년 생 올해 나이 84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나는 소외계층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선언했을 만큼 항시 민중 옆에 서 있는 대단한 감독이다. 그 어렵다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도 두 번이나 수상했다.
그의 연출을 보면 화려하거나 과장된 것이 없다. 그냥 그 자체. 최대한 현실적인 모습을 그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너무 현실 같아서, 혹은 내가 언제든 당할 수도 있는 일이라서.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켄 로치의 캐스팅 철학은 인상적이다. <방구석 1열> 39회를 보면 켄 로치는 배우의 집안 내력, 이데올로기 등을 보고 캐스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연을 맡은 데이브 존스와 헤일리 스콰이어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외 출연한 영화가 전무할 만큼 이색적이다. 어떻게 그는 배우가 아닌 사람을 출연시킬 생각을 했던 것일까. 놀라울 따름이다. 배우에 대한 자세한 필모그래피가 없어서 그 이상 덧붙일 이야기는 없다.
다니엘: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다니엘 블레이크는 수입이 완전히 끊기는 등 본인의 생계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면서도 이웃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솔직히 나라면 내가 힘들 때 나 하나밖에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마땅한 직장을 잡지 못한 지금도 주변 사람을 챙길 여력이 없다. 그 탓에 인간관계도 상당 부분 끊긴 상태다. 한데 다니엘은 죽음 직전까지도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지점이다.
다니엘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 가난하거나 능력이 변변치 않더라도 인간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싶다. 오히려 반대 경우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성공하거나 부자가 되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약 어느 순간 속물이 되어 버린다면 스스로가 굉장히 흉물스러워질 것 같다. 많은 것을 갖지 못하더라도 그 인간적인 마음은 잃고 싶지 않다. 영화를 보며 다시금 되새기게 됐다.
2019.01.28.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