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상업영화 틈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영화가 있다. 개봉 9일(2월 1일 기준) 만에 4만 명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 다양성 영화인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수치다. 영화를 향한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15분간 기립박수를 받으며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이번 달 25일 열릴 제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올라 있다.
보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영화는 실제 시리아 난민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축소하면 축소했지, 없는 일을 꾸며내진 않았을 것이다.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는 이상 머나먼 한국에서 알 수 없는 현실이었다. 지금 나의 고민이 너무 배부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살만하니까 고민하고 여유 부리는 것이었다. 끼니조차, 살 집조차 해결되지 않았다면 현재의 고민은 품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음이 숙연해졌다.
머나먼 타국의 참혹한 현실을 안다 해도 사실 내가 도움을 줄 방법은 없다. 여력이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개인이 받아들이는 고민의 크기는 상대적인 것이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도 충분히 힘들고 절박하다. 다른 것을 돌아볼 여력이 별로 없다. 핑계일 수는 있으나 지금 상황이 그렇다. 그런데 타국의 상황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외면하지 않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것이 꼭 실질적인 도움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외면한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참혹한 현실의 일들 말이다.
영화 <가버나움>을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동시에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소중한 것이 너무나 많다. 자인(자인 알 라피아)에 비하면 우리는 하루하루 즐기며 사는 것이다. 다양성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꼭 추천하고 싶다. 꼭 한 번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잘 됐다. 이번 설 연휴를 이용해 이 영화를 보면 될 것이다.
가버나움은 시리아 난민의 현실을 담고 있는 영화다. 주인공 자인은 레바논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으로서 출생 신고도 하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일만 하는 열두 살 가량의 남자 아이다. 그의 부모는 아이 교육은커녕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시켜주지 못하는데, 심지어 딸 아이 사하르(하이타 아이잠)를 근처 슈퍼 가게 사장에게 열한 살의 나이로 시집을 보낸다. 말이 시집이지 거의 판 것과 진배없다.
자인은 그런 부모의 행태에 분노하며 집을 뛰쳐나온다. 그러고 나서 잘 되면 좋으련만, 원래 집 나오면 더 개고생이다. 어찌 어찌 옆 동네를 떠돌다가 에피오티아 불법 체류자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을 만나 잘 곳을 구하는데, 라힐의 사정 또한 만만치 않다. 그녀도 애까지 딸린 마당에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건 마땅치 않았다. 결국 그녀마저 당국에 잡혀가고, 자인은 또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의 삶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돼 그 고생을 하게 된 걸까. 태어난 것이 잘못이었을까.
자인은 자신의 부모를 상대로 고소한다. 태어나게 한 것에 책임을 묻기 위해. 그러지 않는다면 태어나게 될 동생이 자신처럼 고생하게 될 것이었다. 사실 고소를 하는 것이 그에게 무슨 이득이었겠는가. 그는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책임지지 못할 임신과 출산은 없어야 한다고. 이 세상에 사람 같이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고. 어서 그들을 나락에서 구해 달라고. 그의 메시지는 영화를 통해 흘러나왔고 머나먼 한국의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가버나움 연출은 나딘 라바키 여성 감독이 맡았다. 나딘 라바키는 이 영화로 의미 있는 기록을 수립했다. 바로 아랍 여성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것이었다. 그만큼 가버나움은 그녀에게도 특별한 영화였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비전문 영화배우를 주연 배우로 출연시켰다는 점이다. 주인공 자인은 실제 시리아 난민 출신이다. 영화에 나온 장면이 그에겐 실제 현실이고 삶이었다. 그러니 그만한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감독으로선 부담이 따르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딘 라바키 감독은 과감히 비전문 영화배우를 주연배우로 낙점했고, 성공했다.
앞서 말했듯, 가버나움의 주인공 자인 알 라피아는 실제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열두 살이 되도록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몰랐다고 한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그를 보게 되었는데 운명처럼 그에게 끌렸다고 한다. 그렇게 주인공으로 낙점된 자인 알 라피아는 생애 첫 연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현재 그와 그의 가족은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노르웨이에서 거주 중이며 학교도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인뿐 아니라 사하르, 요나스 등 출연 배우 대부분이 비전문 영화배우 출신이라고 한다. 그들은 연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 경험한 일들을 재연한 것밖에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먹먹해지고 감동을 주었던 것 아닐까. 시리아 난민들이 현재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조금이나마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였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자.
나는 자유의 가치를 사랑한다. 개인이 자유로워야만 행복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위해 힘쓰는 나라가 제대로 된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 이전에 생존이 우선이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자유는 허울뿐인 이름이 된다. 생존을 지키기 위해 개인은 너무 나약한 존재다. 국가가 필요한 이유다. 개인의 생존은 국가만이 지켜줄 수 있다.
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가 우리의 지향점이라곤 하나 그전에 개인의 생존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여건을 마련하고 그 위에서 꽃 피울 수 있도록 하는 국가가 필요하다. 영화 <가버나움>을 보고, 국가 없는 자유라는 가치는 얼마나 허울에 불과한지 알 수 있었다. 이는 비단 난민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도 얼마나 문제가 많은가. 집값 문제, 실업 문제, 물가 문제. 다 생존에 관한 문제들이라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선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고, 한 걸음도 발전할 수 없다. 국가가 신경 써야 하는 가장 첫 번째 문제는 바로 국민의 생존이다. 그것을 해결해야 발전도, 자유도, 정치도, 국위선양도, 행복도 있는 법이다. 모든 것을 정쟁의 관점으로만 볼 게 아니라 본질이 무엇인지 되뇌어 볼 시점에 와 있다.
2019.02.01.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