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 빠삐용이 2019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라미 말렉의 신작이란 것만으로 홍보 효과는 대단했다. 그러나 현재 흐름은 그리 좋지 못하다. <사바하>, <항거>, <증인>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오늘 <캡틴 마블>이 개봉한 상황까지 맞이했다. 2월 27일 개봉한 이후 빠삐용은 줄곧 순위권 뒤에 밀려 있다. 그 결과가 나는 조금 의아했다. 아무리 영화마다 광고 규모가 다르다 하더라도 지금의 성적보단 훨씬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빠삐용의 개봉 소식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 이래선 안 되겠다. 나는 재밌게 봤으니 나라도 이 영화를 홍보해줘야겠다. 작품성으로 따진다면 이 영화는 지금의 위치가 어울리지 않는다. 확실히 볼만한 영화였다.
① 어떤 영화였는지
정말 놀라울 뿐이다. 이 영화가 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2년간, 그리고 다시 5년간 독방에서 갇혀 있었는데 기어코 살아 나와 결국엔 탈옥에 성공했다. 그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나는 군 생활 1년 9개월도 참기 힘들어서 죽는 소리를 냈는데 주인공 빠삐(찰리 허냄)는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총 7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작가 앙리 샤리에르가 겪은 실화다. 그 최악의 환경에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정말 자유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까. 무엇이라도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나는 영화를 보며 자주 나를 빠삐에 대입시켰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탈옥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어떻게든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려 들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살아남아 탈옥하려 했던 빠삐의 끈질김이 나는 놀라웠다. 그만큼 나는 과감하지 못하다. 그저 영화 내내 감탄만 했던 것 같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저 긴장된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지. 꼭 내가 탈옥수가 된 것처럼 영화 내내 심장이 쫄깃했다. 그러한 몰입감이 영화의 재미를 더욱 살렸다.
영화 빠삐용은 1973년에 이미 만들어진 적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때 그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기보다 원작 소설 <빠삐용>을 새롭게 재해석한 영화에 가깝다고 한다. 과거 영화나 원작 소설을 본 적이 없어서 직접 비교하는 것은 어려우나 그런 것 몰라도 이 영화 자체의 매력이 워낙 충분했다. 특히 2019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라미 말렉과 ‘빠삐’ 찰리 허냄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실감나는 연출과 심도 깊은 연기가 만나니 이렇게 재밌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 영화 관련해 눈에 띄는 일화가 있다. 원래 이 영화는 해외에서 2017년 개봉한 작품이라고 한다. 한데 <보헤미안 랩소디>로 라미 말렉이 일약 스타덤에 오르자 급하게 국내 개봉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라미 말렉은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사실 이 영화에 먼저 출연한 셈이 되는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의 라미 말렉도 훌륭했지만 백만장자 ‘드가’ 역의 라미 말렉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보헤미안 랩소디> 때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② 빠삐용 스토리에 대해
금고털이 계(?)에서 나름 이름 있는 빠삐는 겁 없이 활약한 덕에 파리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어느 날 살인 혐의를 뒤집어쓰는데, 이내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하루아침에 죄수로 전락한 그는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악명 높은 기아나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항소하기보다 그곳에서 탈옥하는 것을 택하는데, 그것이 쉬울 리 없었다. 한 번 탈옥하다 걸리면 독방에서 2년, 두 번 걸리면 독방 5년, 이후에 악마의 섬에 이송돼 평생 수감됐다. 그럼에도 그는 지속적으로 탈옥을 시도하는데, 영화에서는 세 번째 만에 성공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여덟 번에 걸친 탈옥이었다고 한다.
탈옥에는 필요한 장비를 마련하고 관련자들을 구워삶아야 했기에 어느 정도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빠삐는 불법 위조지폐 유통 혐의로 수감된 백만장자 ‘드가’에게 접근한다. 이해관계가 맞물려 후에 그들은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 모든 탈출 과정이 영화에 생생하게 드러나는데 쫄깃하니 꽤나 재밌다.
개인적으로 스토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게 낫다고 본다. 예측 가능하다면 몰입이 덜했을 것이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봐야 영화가 주는 충격도 크고, 영화의 몰입도 더욱 살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영화가 실화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물론 극적인 스토리가 첨가됐겠지만 그럼에도 놀라움을 주는 스토리였다.
③ 빠삐용 연출에 대해
빠삐용 원작 영화를 보지 못해서 그것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집어내는 것은 못하겠다. 다만 그것과 상관없이 연출이 상당히 깔끔하게 잘 이루어졌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자연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섬, 바다, 숲, 해안가 등 다양한 장면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예쁘고 아름다웠다. 자연 경관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④ 빠삐용 배우에 대해
불과 1년 전 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라미 말렉은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역을 너무나 찰떡같이 잘 소화해내 탄성을 자아냈다. 그 역시도 이집트 계 이민자였기에 그런 진정성 있는 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보헤미안 랩소디> 이후에 보는 라미 말렉의 연기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 생각보다 그의 연기 폭이 훨씬 넓다는 느낌. 앞으로 다양한 영화에서 그의 연기를 볼 수 있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만큼 이번 빠삐용에서도 그의 연기는 훌륭했다. 백만장자 역의 ‘드가’도 잘 어울렸다.
또 다른 주연 찰리 허냄. 라미 말렉이 워낙 화제의 중심에 선 터라 그의 출연이 더욱 부각된 것은 있으나 사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연은 단연 빠삐용인 찰리 허냄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크고 작은 영화에 꾸준히 출연해온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역시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은 <퍼시픽 림>이었다.
찰리 허냄은 이번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특히 독방에 갇혀 5년을 보낸 연기가 가장 눈에 띄었다. 처음엔 굉장한 근육질의 남자였는데 점차 조금씩 말라가더니 시간이 흐른 후 수척해진 모습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눈빛은 여전했는데 그의 현실감 있는 연기가 돋보였다. 확실히 체형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히어로 물에 어울리는 배우였다. 약간 마블의 토르 느낌도 났다. 아무튼 앞으로의 그의 연기가 매우 기대된다.
⑤ 빠삐용 보고 든 생각
요즘 하도 기가 막힌 일이 많아서 웬만한 영화로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현실이 더욱 잔인하고 기상천외한 것 같다. 요즘 나는 건강염려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건강에 예민한 편인데, 그런 걱정을 한 적도 있다. 혹 갑자기 불미스런 일에 휘말려 지금의 안정을 위협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 당연히 불필요한 걱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내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빠삐용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하며 살아야겠다고. 나의 운명은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혹여나 불미스런 일에 빠질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며 살아야겠다고. 그나저나 걱정은 좀 줄여야겠다. 괜한 걱정에 몸이 먼저 상하겠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다. 건강을 가장 첫 번째로 두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다 소용없어진다. 돈 많고 출세하면 뭐 하나, 건강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을진대. 행실에 조심하며 건강에 유의하는 것이 평생 동안의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
2019.03.06.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