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허지웅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왜 다소 삐딱한 그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까요. 대체 그에겐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는 걸까요. 확실한 건 그에게 매력이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을 따르게 하고, 일거수일투족 관심 갖게 만드는 매력. 그 이유에 대해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자신 있게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에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라고. 허지웅은 결코 돌려 말하지 않아요.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민감한 사회 문제든, 그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얘기를 해요. 그것이 때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시원함을 선사할 거예요. 자신도 그처럼,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살고 싶다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할 거예요. 그것이 그를 향한 사랑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선망의 대상으로서 그는 꼭 필요한 존재예요. 앞으로도 그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길 바라죠. 일단 그 전에 그의 쾌유를 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최근 긴 투병 생활을 마치고 인스타 통해 소식을 전했는데요. 그의 병이 하루빨리 완치되길 바랄 뿐이에요. 완치된 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 얼른 보고 싶어요. 역시 건강이 먼저죠. 그만의 행보, 기대하고 기다릴게요." -2016년 11월 30일 출간한 허지웅 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적> 서평
① <나의 친애하는 적>은 어떤 책?
<나의 친애하는 적>은 2016년에 나온 허지웅의 여섯 번째 도서예요. 에세이로선 지난 2014년 출간한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 이은 작품이죠. 이 책이 출간한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세상이 한창 시끄러울 때였는데요. 허지웅 역시 그것에 영향을 받아 감정적이고 긴장된, 그때의 분위기를 담고 있어요. 사실 그것이 그가 가진 원래의 분위기이기도 하죠.
정치에 관련된 그의 생각도 이 책을 통해 많이 접할 수 있었어요. 그것이 그 사건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었죠. 모르긴 몰라도,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느껴요. 그때보다 삶이 더 나아지진 않았더라도, 여전히 사회는 시끄럽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직감적으로 변화가 느껴져요.
전작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도 마찬가지로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담겨 있어요. 에세이보다 비중이 더 많을 정도로요. 개인적으론 그 부분이 아쉽기도 했죠. 그중 봤던 영화가 나오면 반갑긴 했지만, 모르는 영화가 나오면 도통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솔직히 그 부분은 뛰어넘고 보았어요. 물론, 중간 중간 에세이는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죠.
이 책은 허지웅이란 사람을 한층 더 깊이 알 수 있게 해주었어요. 무언가 비극으로 가득한 듯하지만, 절묘하게 현실과 맞닿아 있고, 또 우리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도 하는, 그의 글은 언제나 매력이 있어요. 이 책에서도 그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죠. 다음 책이 기다려졌어요. 얼른 써주셨으면. 아 그 전에 먼저 건강하셨으면.
② <나의 친애하는 적> 좋았던 점
당신이 영화에 미쳐 사는 영화애호가라면, 또 그가 이 책에서 언급하는 영화를 모조리 꿰뚫고 있다면, 이 책에서 다양한 풍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저도, (그 범위는 지극히 한정적이라) 이 책에 언급된 영화를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솔직히 이 책을 깊이 있게 즐겼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아요. 중간 중간 등장하는 그의 에세이로 그 아쉬움을 달랬죠. 사실 아쉬움을 상회할 만큼 에세이가 좋긴 좋았어요.
글 자체가 좋은 것도 있었지만, 역시 허지웅이란 사람이 쓴 글이어서 더욱 좋았던 것 같아요. 사람이 매력적이어서 글도 매력적인 책. 그것이 칭찬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제게 느껴지는 이 책은 그러했어요. 그의 정신세계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책. 앞으로 그가 써내려가는 책은 또 어떤 세계를 담고 있을지, 아마 투병 생활 이후의 그의 가치관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지, 궁금함이 생겼어요. 다음 책이 기다려지네요.
③ <나의 친애하는 적> 아쉬웠던 점
누차 언급했듯 에세이의 비중이 적은 것이 아쉬워요. 조금 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너무 적었죠. 대부분의 에세이도 정치적인 얘기, 사회문제 얘기에 치우쳐져 있어 정작 그에 대해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은 부족했어요. 물론 그것 또한 그의 일부이기에, 독자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조금 더 인간적이고, 한 사람의 그를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런 점에서 '121페이지'부터 시작되는 그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룬 글은 마음을 울리기 충분했어요. 그와 비견될 건 아니지만, 저도 저의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리 매끄럽지 않거든요. 아무래도 감정 이입이 되어서 그런지 이 에세이가 가장 마음에 남았어요. 이런 글이 많았다면, 아버지와의 관계뿐 아니라 다양한 관계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그런데 내가 되고 싶은 어른으로 나이 먹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그날 멀어져가는 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던 2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났을 때, 그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게 너무 부끄럽고 슬프다. p26
살다보면, 삼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삼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p121
어떤 면에선 아버지 말이 맞았다. 그게 누구 덕이든, 나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컸다.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멀쩡한 척 살아왔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혼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좋은 어른은커녕 이대로 그냥 독선적인 노인이 되어버릴까,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p127
2019.05.20.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