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보통의 존재가 써내려가는 이야기
세상에나, 내가 버스기사의 글을 읽을 줄이야. 나에게 버스기사란 그저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 이상의 의미는 없다. 한 번도 내 머릿속에 '그 존재'를 생각거리로 두어본 적이 없다. 그저 '항상 화가 나 있는 사람' 정도로 인식한 적은 있다. 난 그 점이 의문이었다. 왜 그들은 항상 화가 나 있는 걸까. 얘기를 들어볼 기회가 없으니, 그간 궁금증도 풀리지 않았다. 한데 이번에 그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서울은 그나마 양호한 편인데, 지방으로 가면, 특히 대학시절 거주했던 천안으로 가보면 버스기사의 난폭한 운전에 기겁하기 쉽다. 그들의 운전은 흡사 카레이서의 것과 맞먹었다. 항상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질주 본능을 깨웠다. 한 번은 일요일 밤에 막차버스를 타고 학교 앞 자취촌으로 들어가던 길이었다. 월요일 오전부터 수업이 있기에 매번 하루 전날인 일요일에 내려 갔다.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늦어져 막차버스를 타야 했던 상황인데, 일요일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 안의 승객이 나밖에 없었다. 아, 오늘은 여유롭게 들어가겠구나, 마음을 편하게 먹고 의자에 앉았는데, 이럴수가 기사 아저씨의 드라이브가 심상치 않았다. 멈춰야 하는 정거장은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고, 신호는 벌써 점멸등으로 바뀌어 고속 주행이 가능한 환경이 되어버렸다. 장장 5km 이상 되는 경로를 기사 아저씨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질주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족히 시속 100km는 넘을 것 같았다. 나는 버스 손잡이를 생명줄 삼아 꼬옥 붙들었다. 기사 아저씨의 머릿속엔 그저 빨리 종점 찍고 퇴근하자는 생각뿐인 것 같았다. 다행히 내려야 하는 곳에 안전하게 하차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아찔한 기억이었다. 그만큼 천안 버스는 전국에서 악명을 떨칠 만큼 일촉즉발의 상황이 빈번히 일어나는데, 그런데도 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 건 의아한 일이었다. (공식 통계는 못 보았으나 내가 다니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스위스에서 월 삼백만 원 기본소득 투표가 반대 일흔일곱 표로 부결되던 즈음에 구글 사장은 티브이에서 운전 같은 단순 작업은 인공지능한테 맡기고 전 인류가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자고 열을 올린다. 상반된 두 사례를 보면 인류는 이제 기존 방식으로 미래를 전망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어떠한 낙관이나 비관도 모르는 소리가 되기 쉽다. p68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중에서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는 전주의 한 시내버스 기사가 쓴 에세이다. 버스기사가 글을 쓴다는 것이 왠지 안 어울리기도 한데, 막상 읽어보면 저자의 글실력에 감탄하게 된다. 아니, 버스기사가 이렇게 잘 써버리면 어떻게 하잔 거야. 나는 괜히 심술이 났다. 부러우면 지는 거랬는데, 나는 이미 완패했다. 확실히 이 책의 저자는 웬만한 기성 작가보다 글을 잘 쓴다. 그건 타고난 능력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대체로 3~4페이지의 짧은 에세이다. 중간 중간 저자의 시도 볼 수 있다. 그것 제외하고는 대부분 버스 운행 시의 에피소드인데, 버스기사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거의 전무했던 터라, 그의 이야기는 새로움과 신선함을 몰고 온다. 버스기사만의 고충과 그들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원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선 상대를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도 극명했다. 식당 서빙 일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식당에 가면 공손함이 기본 탑재되어, 누가 알바생인지 모를 만큼 매너 있게 행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들이 행하는 서비스는 당연한 것이고, 손님은 그것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만 생각한다. 쉽게 말해 '갑질'을 일삼는다. 그것이 꼭 나이 든 사람만 해당하는 게 아니고, (경험상 오히려 젊은 손님들에게 더 무시를 받거나 갑질을 당했다.) 아르바이트 경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잇다
버스는 도시와 도시를 잇고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고
도시와 마을과 사람을 잇기도 한다
부업으로 밤과 아침을 잇기도 하는데
서쪽 바다로 떨어진 해가 동쪽 바다에서 솟아오를 수 있는 것은
기사들이 해를 싣고 밤새 내달렸기 때문이다
우주가 시간과 공간으로 직조된 끝없는 보자기라면
도시는 조각난 꿈들을 이어붙인 밥상보
시내버스가 박음질한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중에서
나는 이런 류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글쟁이가 자신의 글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허세 부리는 글이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존재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제 글쟁이만이 글쓰는 시대는 지났다. 누구라도 글쟁이가 될 수 있다. 때론 보통의 존재가 전문적인 글쟁이보다 더욱 묵직한 글을 내놓기도 한다. 글 소재 찾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가 이야기인 사람들. 버스기사뿐 아니라 환경미화원, 슈퍼마켓 사장님, 아피트 경비아저씨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글을 잘 써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보통의 존재도 글쟁이가 되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기본 중에 기본이다. 글 실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 한 아무리 신선한 이야기도 빛을 바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 허혁 작가는 글실력이 뛰어나다. 기성작가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의 글에서 오랫동안 틈틈이 습작해온 흔적이 묻어났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잘 쓸 리가.
자기 능력의 70퍼센트를 쓰며 사는 사람이 제일 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머지 30퍼센트의 여유 공간에서 인간다운 면모가 나온다고 한다. 다음 날 쉰다지만 근무 날 자기 능력의 150퍼센트를 써버리면 회복도 더디고 늘 피곤에 절어 살 수밖에 없다. p81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중에서
그러나 한편으로, 책에서 버스기사의 난폭운전이 합리화된 점도 있다.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진 이해가 되어도, 난폭운전이 합리화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내 문제의식이다. 어떤 경우에도 난폭운전은 금물이다. 차 내 승객들뿐 아니라 다른 차량에까지 심각한 피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이런 운전 습관은 고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뜩이나 존재만으로 위협감 느껴지는 버스인데, 난폭운전까지 하면 보는 내가 다 살 떨린다. 그것이 버스뿐이겠는가. 우리나라 도로교통 문화는 확실히 과히 경쟁적이며 감정적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도로 위에 배려하는 문화가 꽃 피우길 바란다.
2019.07.11.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