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가
사랑받은 이유

책리뷰

by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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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도서가 200쇄 이상 팔렸다는 것은 대단한 기록이다. 200권도 아니고 200쇄라는 것은, 1쇄당 아무리 적게 잡아도 1만 권 이상이라는 것이고, 인기를 탈 때부터는 자신감 있게 찍어냈을 테니, 대충 잡아도 200만 권 이상, 최대 500만 권 이상 팔렸다는 얘기다.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활력 잃은 최근 출판 시장에 이러한 판매 기록은 가히 '역대급'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어떻게 이렇게 '초대박'을 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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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월급의 2배짜리 명품백만이 낭비가 아니고,

연예인 걱정만이 낭비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 곧 사라질 존재들에게

마음의 에너지를 쏟는 것 역시 감정의 낭비다.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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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의 높은 판매고를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병들고 아프다는 것이니까. 그만큼 보통의 존재가 '나'로 살지 못해 답답하다는 것이니까. 그만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산다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만큼 불행하다는 것이니까. 그 사실이 마음 아플 뿐이다. 그러한 보통의 마음이 단순히 판매 실적으로 드러났을 뿐, 이 책이 실용도서로서 가치가 있다고 보진 않는다. 몇몇 구절에서 공감을 얻을 순 있어도 이 책을 통해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오긴 어렵다. 그런 변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애초에 변하고도 남았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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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상적 혐오에 대해 <모멸감>의 저자 김찬호 교수는

웬만큼 잘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 공허를 채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타인에 대한 모멸이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희미해진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열패감을 보상받기 위해,

얄팍한 우월감을 맛보기 위해 타인을 모멸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찌질한가.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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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포기하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마라, 나의 삶을 살아라. 말은 참 쉽다. 모두가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헌데 정말 그러기만 한다면 만사형통일까. 그럼, 사람을 아무도 만나지 않아야 한다. 명절 때 친척들은 어김없이 내게 불편한 질문을 할 텐데, 그런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나로 사는 것과 관계없이 그런 상황에 놓이면 자꾸 자존감은 깎이고 나 자신은 초라해진다. 그런 외부 변수까지 내가 어떻게 통제할 방법이 없다. 아무리 자존감 높은 사람이어도 은연중에 비교 당하거나 차별을 경험하면 정신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느 정도 능력 있고 '있어빌리티'가 있으니까 그런 상황을 피하고 자존감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뭣도 없는 사람은 그런 상황에 너무 쉽게 노출된다. 나만 멀쩡하다 해서 전혀 타격을 안 받는다? 삶이 매우 충만할 것이다? 그런 건 없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고 외부 변수는 늘 판을 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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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자존감 없이는 점점 버티기 힘든 곳으로 변해가는데

개인은 자존감을 세우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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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사회 현상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렸다. 충분히 보통의 존재 입장에서 적절히 서술했다. 과하거나 무리하진 않았다. 그렇다 해도 나는 나로 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했다. 나로 살면 모든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일단 나로 살기 어렵다. 물론 나는 나로 사는 것이 스트레스를 피하는 방법이고, 나 또한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 삶 또한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나만 외톨이 같은 느낌. 나만 삐딱선 탄 느낌. 오히려 나 보고 왜 힘든 길 택하냐며 안쓰러워하는 그 눈빛. 그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우면 좋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사이 그런 눈빛을 받는다면 타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혼자 있을 때나 정신 승리하고 나로 사는 거지, 다른 사람과 마주하고 소통할 때면 그들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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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가 완벽하지 않아서 싫어하지 않는다.

완벽한 척하는 그 오만함에 질리는 거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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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로 사는 길이 탄탄대로고, 늘 희망으로만 가득 차면 좀 좋을까. 그런 일은 전혀 없다. 사회 부적응자로만 안 비치면 다행이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포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그런 것 없다. '있어빌리티'의 그것을 포기한다고 해도 여전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존재하고, 그것은 늘 나의 삶을 옭아맨다. 그러니까 인간의 이상은 늘 높고 조바심 느끼게 한다. 당연하다. 현재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계속 뒤처지는 것 같으니까. 나로 사는 삶을 추구한다고 해도 타인의 시선, 의식하게 된다. 왜냐, 나는 가진 게 없고,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점점 부를 쌓고 앞서가니까. 나로 살기만 해서 어떻게 그 사람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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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취업은? 연애는? 저축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이 불편하다고 착각한다.

사실은 질문이 불편한 게 아니다.

그 질문 뒤에, 나에 대해 내리는 타인의 판단이 불편한 거다.


자신들의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나를 잘못된 사람으로 만드는 시선과 판단,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타인에 대해선 심리학자이자 프로파일러이자,

가장 중립적 비평가로 둔갑하여 너무나 쉽게 판단한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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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결혼도 포기? 그러면 나로 사는 삶인가. 타인 의식 안 하며 살 수가 없다. 사람을 아무도 안 만나면 가능하다. 만났을 때 무슨 말할 것인가. 남들 다 현실에서 죽는 소리하는데, 거기다 대고 타인의 시선에서 좀 벗어나 봐라, 네 삶 좀 살아라, 그런 소리할까? 의절할 각오하고? 결론은 나로 사는 삶이 많은 스트레스는 줄여주는 건 맞는데, 결코 완벽한 해답은 아니고,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적당히 스트레스 받으면서 적당히 해소하며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이 책이 진정성이 없던 건 아니지만 나로 살기만 한다면 모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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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특별히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알고 보면 우정의 종료는 누구의 삶에나 일어나는 보편적인 일이다.

그러니 떠나간 관계에 대해 스스로를 지나치게 탓하지도,

남겨진 것에 겁먹지도 말자.

대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자.

지금의 나와 닮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자.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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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을 실용서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나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해줄 뿐, 하나하나 실천할 수도 없고, 어차피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사회제도 탓을 하고 갑질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꼬집을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차피 사회 제도는 쉽게 안 바뀌고 꼰대들의 인식은 안 바뀔 텐데. 그것이 듣기 좋은 소리가 될 수는 있어도 실제 변화를 가져오긴 어렵다. 나만 변해서 뭐 하나, 사회는 그대로인데. 나도 답답하다. 그럼 이 사회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좋은 건 사회 제도가 바뀌는 건데 그건 내 뜻대로 될 리 없고, 나만 잘한다 해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에서 적절히 영향력을 행사하자. 즉 나만의 공간을 만들자. 내 공간에서만큼은 나의 뜻대로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뭐만 하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환심을 사지 않는다. 그런 일은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테니.




2019.10.31.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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