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부족한 점 없는 사람처럼 굴고 싶지 않다
정용하 에세이
이제 내가 어떤 자리를 싫어하는지 알겠다. 또, 어떤 사람과 함께 있는 걸 꺼려하는지 알겠다. 명확해졌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는 걸 싫어한다. 있어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과 함께 있는 걸 숨막혀 한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아무리 술을 마셔도 텐션이 오르지 않고,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술자리가 파한 뒤 허무함이 온몸을 덮친다. 괜히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후회가 며칠 가도 가시지 않는다.
사람이 아무에게나 솔직할 수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것을 더 실감한다. 자기를 있어 보이게 포장하는 건 어찌 보면 본능이다. 그러나 그게 지나치면 우리 사이에 아무 말도 나눌 수 없다. 그 어떤 교감도 나누기 힘들다. 그런 이들 사이에 누구라도 솔직하면 그 사람은 외톨이가 된다. 달갑지 않은 이방인이 된다. 우리는 그 정도까지 교류할 생각이 없다는, 그들과 나 사이에 두꺼운 벽이 생긴다. 그 순간부터 솔직한 사람은 눈치 없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는 게 너무 싫다.
내가 생각하는 솔직함이란 다른 게 아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아무렇지 않게 꺼낼 수 있는 용기다. 그것이 인간관계 사이에 꼭 중요한 일이냐, 꼬집을 수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무척 중요하다. 서로의 부족함을 나누지 않고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서로의 잘난 모습만 보고 어떻게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그렇게 알려 드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겐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있어 보이는 척만 하고 앉아 있지는 못하겠다. 나는 잘난 사람이 아니다. 부족한 점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못난 부분이 아예 없는 사람처럼 멀쩡한 척 굴지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부러 그런 모습을 노출하는 머저리는 아니다. 다만 진솔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꺼낼 용기는 있다. 먼저 부족한 모습을 꺼내며 상대에게 친해지자 손을 건넬 열린 마음은 있다. 상대방은 당연히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만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 난 용기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잘못된 게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다.
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취급했다는 걸 어찌 아느냐고? 그들의 시선. 내가 솔직한 발언을 했을 때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 정적. 눈을 마주치려 했을 때 회피하는 그들의 눈. 그들의 본심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분명 그 자리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그래서 화가 났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드러냈을 뿐인데, 그들은 그것까지 원하지 않았다. 우리의 거리는 이 정도가 적당해, 내 앞에서 단명하게 선이 그어졌다. 안타까운 건 그런 자리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서로의 솔직하고 부족한 모습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점점 적어진다. 내가 이상한 건가. 심하게 오버를 하는 건가.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건가. 아니면 사람을 잘못 만난 건가. 남들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나는 왜 몇 십 번 곱씹게 되는 걸까. 답답할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예전만큼 극단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는다. 그런 경험을 겪었다 해서 연락을 차단하거나 관계를 끊지 않는다. 그냥 나도 적당히 관계의 거리를 조정할 뿐이다. 내가 취할 것만 취하고, 아닌 건 관심 갖지 않는다. 다른 경로를 통해서 새로운 만남을 갖고 인연을 쌓으면 된다. 또 마음이 맞는 사람과만 어울리면 된다. 나와 안 맞는 사람까지 애써 마음 주지 말자. 그들에 대한 생각으로 내 아까운 마음을 쓰지 말자. 그게 내 결론이다.
분명 좋은 사람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그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나는 좋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용기와 적극성이 있다. 나는 그런 솔직하고 괜찮은 사람이다.
2019.11.20.
작가 정용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