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Jan 14. 2020

24. 프리랜서에서 직장인으로 탈바꿈?

정용하 에세이



지난 주 월요일, 2년 전 아르바이트 했던 곳의 대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취업했어?"

"아니요."

"취업할 생각 있어?"

"..."     


나는 처음 아니라고 답했다. 3년 안에 독립서점을 차릴 계획이라고. 그랬더니 대리님은 한 발자국 물러났다.     


"아 그래?"

"어떤 것 때문에 그러세요?"     


대리님은 정규직 기회가 있는데, 네가 생각 있으면 데려가려고 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움찔했다. 정규직이라니. 남들은 들어가고 싶어 안달난 그것, 그런 뜻밖의 기회가 내게 찾아온 것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생각해보고, 제가 빠르게 연락 드릴게요."

"그래."     


그러고 나는 몇 시간도 안 돼 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그 사이 엄마와도 통화를 했는데 엄마는 당연히 꼭 하라고 했다. 그것 때문 아니더라도 나의 결정은 의외로 빠르게 내려졌다. 나도 놀랐다. 나의 계획은 꽤나 구체적이었는데, 그런 제의에 계획이 단번에 뒤집혀 버리다니. 사람은 역시 단순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 나의 욕망을 생생히 확인했다. 나는 직장 생활을 싫어한다고 믿어 왔는데, 나 혼자 일하고 책임지는 일에 흥미가 있다고 말해 왔는데, 정규직 기회 앞에 그 믿음이 허언으로 밝혀졌다. 나는 사실 안정된 일자리가 갖고 싶은 것이었다. 대기업 회사원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욕망이 내 마음속에 들끓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이번에 깨알았다.     


그러나 내 능력으로는 될 수 없으니까, 관심 없다고, 싫다고, 합리화를 해왔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그런 합리화의 연속이었다. 이제야 그 허언이 들통났다. 나도, 안정된 일자리가 탐이 났다. 안정된 일자리만 가진다면 나도 보통의 삶을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바라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삶. 그것을 나는 안정된 일자리를 가져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내가 뜻하지 않게 정규직 일자리를 가질 수도 있게 됐다. 이제 다시 그 꿈을 품을 수 있게 됐다.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대리님의 제의를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누군가와 예쁜 사랑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보통의 연애를 하며 행복해 하는 내 모습.     


아무리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해도, 타인이 나를 그만큼 비전 있는 인물로 바라보진 않는다. 왜냐, 현재 나는 그만큼 돈을 벌지 못하니까. 그만큼의 명함이 없으니까. 한마디로 말해 그만큼 능력이 없으니까. 타인은 미래의 가치를 보고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가치만 보고 나를 평가한다. 그러니까 나는 돈 몇 푼 안 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불안한 20대 청년일 뿐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보통의 삶을 꿈꾸겠는가. 어떤 이성이 나에게 호감을 갖겠는가. 29살 먹고 불안한 미래에 투자하고 있는 나를 보고.     


물론 나는 나의 삶에 만족한다. 또한 이것도 처절한 합리화일 수 있다. 어쨌든 나는 나의 일상을 즐긴다. 조금씩 발전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정규직 제의에 나는 나의 욕망을 확인해 버렸다. 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 나의 계획을 모조리 수정하는 한이 있어도 이번 기회를 꼭 잡고 싶다. 한 번 생각해 봤다. 나중에 이 일을 되돌아봤을 때, 그리고 그것을 거절했을 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겠냐고. 전혀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나는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다. 미래가 어떻게 되든 이번 기회는 놓치지 않는 게 적어도 현재의 나에겐 맞았다. 그 선택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지금 시점에서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 분명 나는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 테고, 지금의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을 품고 살 것이다. 어떤 길을 걷더라도 나는 나의 삶을 살 것이다. 그게 나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직까지 결정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의를 받은 지 열흘 가까이 됐는데 어찌 되는 건지 아직 한 치 앞도 모르겠다. 자꾸 조바심이 든다. 욕망은 들춰졌는데 아무 일도 아닌 게 돼버리면 상당한 타격감이 있을 것 같다. 이왕 기회가 온 거, 확실하게 왔으면 좋겠다. 그 기회가 내 손아귀까지 안정적으로 안착했으면 좋겠다. 되든 안 되든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살 테지만. 이렇게 나는 끝까지 합리화를 하고 있다. 다음 주쯤 결판이 나 여러분들께 그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을까. 이번 주는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2020.01.14.

작가 정용하






매거진의 이전글 23. 프리랜서의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