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하 에세이
에세이를 쓸 때는 '나의 글'을 쓰고 싶다. 나의 글이란 나의 목소리가 온전히 담겨 있는 글을 말한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무엇을 원할까에 집중하다 보면 점차 나의 목소리를 잃어간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게 된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왠지 그런 글을 쓸 때면 '나의 글' 같지가 않다. 나의 마음을 온전히 담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즉 글에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 나에게 글쓰기란 내 마음에 쌓여 있는 감정 부스러기들을 해소하기 위해 쓰는 것인데, 그런 글을 쓰고 나면 오히려 더 쌓이고 고민만 늘어간다. 그런 글이 몸에 맞지 않는 거다. 그래서 이제 그런 글은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 한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글을 쓸 것이다. 바로 지금 같은 글을.
사실 나는 글쟁이로서 자질이 부족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하고 싶은 말이 무성해야 하는데 몇 자 적고 나면 글이 고갈된다. 이야기꾼이 아니다. 글에 나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는 것 치고 그렇게 할 말이 산재되어 있지 않다. 그게 늘 고민이다. 글은 쓰고 싶은데 마땅히 쓸 말이 없다는 것. 글을 통해 해소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막상 몇 자 적고 나면 금방 해소되어 버린다는 것. 예민하지만 의외로 단순한 나의 기질 때문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막 심란하다가도 얼마 안 가 금방 풀려 버린다. 요즘은 잘 심란해지지도 않는 것을 봐서 이제 나도 점점 무뎌지나 보다.
-2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