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해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

by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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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도망가거나 회피하는 것. 일상이 쉽게 무너지고 불안정해지는 것.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요즘 나의 일상은 생체 에너지가 고갈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삶에 지친 것은 아니다. 그저 일상을 이끌어갈 에너지가 부족하다 느끼는 걸 뿐. 직장에 출근하면 몸이 부서진 듯 기운을 내지 못한다. 동료와 어떤 얘기를 나눌 힘도 없다. 어떻게든 일이라도 집중하려 애쓰지만 그마저도 힘에 부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꾸역꾸역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내 상태에 맞춰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 잠이 부족하다면 8시간 이상 자는 것으로 기운을 차려야 한다. 가족, 일, 연애 외에 하는 것을 확 줄여야 한다. 그래서 친구와 만남, 술자리, 모임, 독서 등 부수적인 것들에 쓰는 시간을 거의 줄였다. 최대한 일상을 단순하게 꾸리기 시작했다. 내 하루를 요약하자면 일하고, 운동하고, 잔다. 그렇게 거의 매일 반복한다. 어찌 보면 무미건조한 나날이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나는 그러한 일상을 선택했다. 어차피 부족한 생체에너지를 타고났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확실히 성과는 단순한 일상에서 나온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끝까지 인내하고 버티는 사람이 성과를 거둔다. 불안정하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의 성과는 얼마 가지 못한다. 반짝 성과를 냈더라도 꾸준히 끌고 가지 못한다. 나는 그에 반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매번 큰 성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차곡차곡 쌓아가서 언젠가 한 분야에서 크게 인정받는 사람. 나는 그 분야를 '글'로 설정한 것인데, 나 역시 꾸준함을 갖추기 너무 어렵다. 어떻게든 매주 일요일에 3시간 정도 글쓰는 데 시간을 투자하여 한 편의 글씩 쓰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 않다. 평일은 직장을 다녀서 힘들고, 주말은 게을러져서 어렵다. 역시 모든 게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나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나의 것을 언제든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 밥벌이를 위해 일만 하고 살아야 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게 가정을 지키기 위한 길이라면 몇 십 년이고 뛰어들 것이다. 하지만 나를 위한 주말의 단 몇 시간만큼 반드시 지키고 싶다. 이 시간만큼은 글쓰는 데 쓸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매주 1편씩 쌓이는 나의 글을 보며 나는 억만금을 가진 것보다 더욱 큰 보람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부지런하게 아침 시간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그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저녁 시간, 새벽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그 시간만큼은 확보하고 싶다. 그 시간만 지킬 수 있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시간이 그리 값진 시간인데 게을러 터져서 매주 갖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정말 한심하다.



인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한다. 특히 나이 들수록 개인의 자유는 더욱 줄어든다. 그것은 누가 자유를 빼앗거나 억압해서가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된다. 우선 직장에 다니거나 생업에 종사한다면 주중에는 자유롭게 보낼 수 없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갖는다면 개인의 시간은 거의 사라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만일 혼자 살더라도 나이 들수록 개인의 책임이 더욱 부과되는 방향으로 삶이 꾸려진다. 더군다나 일상의 에너지가 줄어듬에 따라 자유가 주어져도 충분히 누릴 수 없게 된다. 각종 세금도 내야 하고 대출 이자도 갚아야 하고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부모님 건강도 살펴야 한다. 인간의 삶은 자연적으로 그렇도록 설계돼 있다. 만약 이것을 거스르려 한다면 극단의 사고방식을 가진 채 극단의 사람들과만 어울려야 한다. 외로움과 지속적으로 마주해야 한다.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다. 결혼을 약속한 상대방이 자꾸 자유를 외치며 개인의 것만 누리려 한다면 어떻게 그 사람에게 안정감과 신뢰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자신이 누리는 자유만큼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멋있고 건강한 것이다. 나는 그런 책임감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기에, 나의 거의 모든 자유를 포기할 자신이 있다. 결국 그러한 삶의 방식이 더욱 안정적이고 값진 미래를 만들어줄 거란 믿음이 있다.



제한된 자유 속에서 단 하나, 이것만 하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 일상의 95% 이상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애쓰지만 단 5%의 온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 그 자유는 매우 절제되고 일상의 안정성을 깨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게임이나 술자리 같은 소모적인 것보다는 조금씩이라도 쌓이는 것이 좋다. 1년 후가 다르고, 10년 후가 다른, 성과를 볼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제2의 삶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글쓰기로 정했다. 매주 한 편씩 글을 쓸 수 있다면 나는 모든 자유를 빼앗겨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글이 왜 그토록 좋은 것일까. 사실 매번 쓸 내용도 없어서 백지 앞에서 글을 채워나가는 것이 늘 벅차다. 하지만 이 글쓰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나'가 아니게 되는 것처럼 나를 지키는 행위란 인식이 있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고 있구나', 온전히 나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이 시간만이 '온전한 나'가 될 수 있기에 나는 잠시라도 글쓰는 시간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또 글은 꾸준히 쓰는 만큼 차곡히 쌓인다.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 간혹 잘 읽었다며 좋게 봐주기도 한다.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먼 훗날 작가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도 있다.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모든 면에서 치유가 된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데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글을 쓰는 데 유일한 방해물은 나의 게으름뿐이다. 어떻게든 이 시간만큼은 평생 지키고 싶다.



지금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그것은 '존재'일 수도, '가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책임 있는 어른의 삶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존재가 가족이라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역시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돈을 버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물론 전제가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본인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한다. 즉,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이 역시 무리하지 않는 정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내가 언제 지치고, 무엇을 했을 때 회복하는지. 항상 그 소중한 것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야 한다.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은 후회가 없고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나머지 것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고도 싶고, 내 시간도 갖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소중한 것을 지킬 수는 없다. 물리적으로, 금전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소중한 것을 아등바등 지키면서, 그 외 것을 과감히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안정되고 행복한 삶이 주어질 것이다. 나는 그런 확고한 믿음이 있다.



다행히 나는 매순간 내게 주어진 자유를 최대한 누려왔기에 지난날이 후회스럽지 않다. 특히 대학시절 나는 정말 뒤가 없는 사람처럼 열심히 놀았다. 매일 같이 술마시고 매일 같이 사람 만나며 '사람'에 대해 깨닫고, 군대 시절 치열하게 메모하고 홀로 사색하며 '나'에 대해 깨달았다. 독립서점을 개업하고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원없이 했다. 그것들을 전부 20대에 했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만약 지금에 와서 못다한 것들을 하고자 했다면 나는 지난날이 후회스러우면서, 그로 인해 가정을 꾸리지 못한다면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지 않을 수 있는 현실이 무척이나 감사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매순간 소중한 가치를 좇아 왔다. 20대 중반까지는 '친구'라는 가치에, 20대 후반까지는 '나의 꿈'이라는 가치에, 30대부터는 '가정'이라는 가치에 최선을 다했다. 그랬기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앞으로도 나는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



-26.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