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단편소설집 2편 '다 그런 거야'
다 그런 거야
취준생의 신분으로는 어딜 가도, 또 무얼 해도 마음이 시원치 않은 구석이 있다.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인성은 한 달 전, 4년간의 대학 생활과 2년간의 군 생활까지, 대학생으로서의 6년이란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오늘, 그는 오랜만에 외출을 하였다. 그런데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상하리만큼 몸과 마음이 움츠려들었다. 분명 오늘의 기록적인 한파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안양에 가는 길이었다. ‘모임 잡이’ 성태는 졸업이 무슨 축하받을 만한 일도 아닌데 우리끼리 졸업 기념이라면서, 그리고 사회로 나가기 전 마지막 술 파티를 벌이자면서 모임을 주도했다. 성태는 인성과 같은 취준생의 처지이면서도 항상 여유로웠다. 도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건지. 그래도 인성처럼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단 여러모로 나아보였다.
토요일 이른 저녁,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인성이 탄 전철 칸에는 빈 좌석이 곳곳에 보였다. 그러나 인성은 그 어디에도 앉지 않고 전철 문기둥에 가까이 기대어 서 있었다. 30분 넘게 이동하면서 그는 스마트폰 화면에 눈을 떼지 못했다. 딱히 볼 만한 기사거리도, 쌓여 있는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는 무엇에 홀린 듯 스마트폰의 여러 앱을 뒤적거렸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심장박동이 급격하게 빨라졌다.
“이번 역은 수원, 수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도착 안내 음이 고요하던 전철 안의 정적을 갈랐다. 빨간 패딩을 입은 건장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잿빛 머플러를 두른 채 전철 문 가까이 다가섰다. 건장한 남자는 딱 봐도 인성과 15cm 이상 차이가 나보였다. 뒤이어 무릎까지 오는 검정 롱패딩을 입은 늘씬한 여자가 또각또각 소리를 내뿜으며 건장한 남자 뒤에 다가섰다. 인성은 그들과 여유 공간이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문기둥에 바짝 다가붙였다. 이내 그가 탄 전철은 수원역 플랫폼에 들어섰고, 잠시 후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 건장한 남자와 늘씬한 여자는 내렸고, 바로 여러 사람이 전철 안으로 들어와 흩뿌려졌다. 곧이어 전철 문이 닫혔고, 전철은 다시 출발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임 잡이’ 성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왜.”
인성은 입을 가린 채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김인성 어디야. 왜 이렇게 안 와.”
“무슨 소리야. 약속 시간 6시잖아. 이제 5시 30분인데.”
“난 이미 도착했어. 빨리 와, 심심해.”
“나 원래 시험 공부해야 해서 못 오는 건데, 가는 거 알지.”
“뭐래, 아무튼 빨리 와.”
성태는 자기 말만 하고 전화를 툭 끊었다. 그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래도 인성은 어떤 모임이 있을 때 자신을 빼놓지 않고 불러주는 그가 고마웠다. 말도 잘 못하고 존재감도 없는 자신을 성태는 매번 잊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면서 달리는 전철 안으로 노을빛이 바닥으로 잔뜩 깔렸다. 인성은 전철 밖 저 멀리에 길게 늘어서 있는 낮은 산등성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왁자지껄한 삼구포차 안. 같은 테이블 바로 앞에서 떠드는 목소리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삼구포차 안은 빈자리 없이 사람들로 가득 들어찼다. 우리들의 술잔은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했고, 그만큼 알딸딸함의 농도도 짙어져갔다. 인성은 테이블 바깥쪽 자리에 앉아 말없이 그들과 어울렸다. 역시나 한손에는 스마트폰을 놓지 않은 채. 이제 슬슬 전철의 막차 시간이 염려되었다. 주말에다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멀리 살고 있기에 좀 더 먼저 자리를 떠야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그 순간이 좋았다. 비록 자리에서 존재감을 크게 나타내진 못하더라도 그 모임의 일원으로서 자리를 채우는 느낌이 썩 나쁘진 않았다.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이어가던 성태는 인성의 빈 잔을 발견하고는 소주를 한 잔 따라주었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제 곧 가야되지 않냐.”
“응, 이제 곧 가야 해.”
“에이, 그러지 말고, 오늘 나랑 밤 샐래?”
“안 돼. 내일 할 일 있어.”
성태는 소주잔을 들고 목 뒤로 털어 넘겼다. 그리고는 대뜸 말을 이었다.
“인성아, 내가 진짜 친구로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자신감 좀 가져. 우리가 이제 꿀릴 게 뭐가 있냐. 스무 살 어렸을 때나 선배 앞에서 쫄고 그러는 거지 이제 대가리 다 컸잖아. 그러니까 너도 인마 허리 펴고 당당히 다녀.”
성태의 말에 인성도 소주잔을 홱 들이켰다. 그는 말없이 어묵탕 국물을 연이어 퍼먹었다. 성태는 계속 말을 이었다.
“항상 아쉬운 게 그거야. 네가 자신감을 가지면 뭐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볼 때마다 쭈그려서 앉아 있고, 말도 없고. 내가 진짜 선배도 아니라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긴데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고, 좀 더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니까 기분 나빠하지 마.”
“뭐, 알지 나도. 네가 나를 위해 하는 말인 것도 알고.”
인성은 빈 소주잔을 한손에 들고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었다. 동갑인 친구가 하는 말에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그는 모든 걸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떨어뜨리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와 성태 사이에 소음 속 적막이 맴돌았다. 성태는 이내 말없이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고, 인성은 그저 무리와 동떨어진 하나의 섬이 되었다.
우리의 분위기는 점점 더 무르익어 갔다. 인성은 이미 막차 시간을 놓친 지 오래되었다. 고정적인 자리 없이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어울렸다. 우리의 웃음소리는 천정으로 떠올라 한동안 머물렀다. 인성은 성태의 말에 충격을 받지 않았다. 사실 이미 그는 성태 외에도 그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만나왔다. 그저 겉에 걱정을 살짝 칠한 알맹이 없는 말들. 그 사람들의 말처럼, 인간이 쉽게 변할 수만 있었다면 이 험난한 세상을 혼자 살아가도 무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변화에 익숙하지 않기에 우리는 함께하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고, 어떤 집단에 소속하길 바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익숙한 상태로 물 흐르듯 그저 흘러갈 뿐이다.
원래 모든 일이
다 그런 거야.
작가 정용하/2017.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