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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른손 Apr 11. 2019

<회고록#3 - 첫사랑 E(2)>

맨해튼. 완벽해서 불안한, 열정적이어서 예측 불가능한 사랑.

첫사랑 E. 너무나도 고혹적이고, 치명적인 그녀. 헤어 나올 수 없이 깊은 곳까지 빠져버렸고 내 마음은 이미 그녀에게 잠식당했다.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와 약속을 다짐할수록 점점 더 그녀에 대해 궁금해했다. E를 향한 호기심, 소유욕은 점차 나의 사랑의 형태를 뒤틀었다.


이상형의 그녀는 나에게 모든 부분이 완벽하다고 믿었다. 그 사실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그녀와 비교하여 나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아 보였고, 연애와 사랑에 앞서 나는 그녀보다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했다. 이미 주도권을 뺏겨버린 '종'의 입장으로 나 자신을 변화시켰다. 더욱더 그녀에게 '의존'했고, '전부'라고 우상화했다. 나의 애착과 존경을 넘어선 경외심은 '집착'과 '욕심'으로 변화했고 점점 그녀의 목을 조여갔다.


그녀의 과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연인관계에서 서로의 과거를 펼쳐 보이는 것만큼 멍청하고, 막장인 행동은 없다. 애인에게 있어 솔직함을 잘못 해석했었다. 나의 과거를 그녀에게 과장 없이 모두 드러내며 그간의 상처들과 나의 과오들까지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교역의 조건으로 그녀의 과거사를 요구했다. 참 그녀도 바보 같은 게, 그 답례로 일말의 거짓말 없는 정말 솔직한 과거사를 모두 들려주었다. 예상과는 달리, 나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과거 3년간 교제한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3년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녀의 손으로 잘라내었다고 했다. 그 당시 그녀는 아직까지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었다. 과거의 상처에 두려워 가끔은 소극적이기도 하고, 사랑의 박자가 나와 어긋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나는 내가 더 사랑해주고 아껴준다면 해결된다고 착각했었다. 사랑의 상처에는 시간과 자기 변화가 답이라는 것은 그때는 몰랐다. 나에게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내버려두고 운명에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몰랐었다.


과거로부터 시작된 시커먼 '부정'이라는 감정은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 저편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해 주었다. 인간은 완벽한 생물이 아니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결함'과 '단점'들이 극명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나 이외의 사람들을 만나거나 외부활동을 할 때, 연락이 끊겼다.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녀와 격리되어 혼자의 상상으로 그녀를 채웠다. 또한 나와 그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매우 '캐주얼'하고 '가벼운'관계, 즉 언제든지 헤어져도 무방한 관계로 치부했었다. 서로 열렬히 사랑했으나, 그녀에게는 단단하고 결속력 있는 사랑의 조건으로 사랑만으로는 충족이 안됐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은 한동안 계속 요동쳤다. 이런 불안한 내 마음을 무시하는 그녀의 행동은 마음이 점차 병들어가는 과정에 한몫을 더했다. 그녀의 의도와는 반대로 혼자 기분이 상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혼자만의 상상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불쾌해했다. 그녀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넘치는 사랑을 표현했다. 그 대가로 나만큼의 사랑을 요구했다. 애정표현과 만남에 집착했고, 그녀가 나 이외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너무나도 많은 의심을 했다. 필요 이상의 불안증세와 함께 그녀와 내 마음은 점점 곪아갔다.


나를 피하고 밖으로 나도는 시간이 많아졌고, 점점 더 집착은 집요하고 심해져갔다. 애정에 대한 결핍을 느끼기 시작했고, 마음에서부터 여기저기 화와 짜증이 터져 나왔다. 사귀는 동안 내가 우는 경우도, 그녀가 우는 경우도 많이 발생했다. 난생처음 연애로 힘들어 운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요즘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정말 한심하다."

"왜 그래 오빠, 또 혼자 생각하고 힘들어해?"

"우리 다시 좋아지긴 힘들겠지?"

"이제 그만할까...?"

"아니야. 내가 변하려고 더 노력해볼게. 쉽지는 않겠지만."


매혹적이던 뜨거운 사랑의 처음 모습과는 달리, 점차 시간이 갈수록 시들어가고 병들어가고 있었다. 이별은 그렇게 턱밑까지 쫒아왔다. 


위스키와 버무스, 비터스로 만들어진 칵테일 맨해튼은 매번 맛을 볼 때마다 다양한 맛을 낸다. 달콤하고 상큼하기도 하지만 떫은맛이 나기도 한다. 사랑의 달콤 상큼한 맛에 과하게 중독돼버린 나는, 이면의 떫은맛을 점차 극명하게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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