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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Jan 04. 2022

엄마는 혼자 집에서 놀아?

집에서 혼자 일하는 엄마도 있어

"자, 이제 방학이 다 끝나가고 있어

2 밤만 더 자면 다시 어린이집 가는 거야, 알았지?"

12월 마지막 주는 어린이집 겨울방학이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비하면 짧디 짧은 1주일. 기본 1주일에 앞뒤 주말까지 붙이면 총 9일. 9일 동안 4살, 6살 두 아이와 24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을 때는 1분 1초도 쉬지 않고 붙어있었는데.. 단맛을 보고 나니 그 일이 이렇게나 무겁다.



이제 막 7세가 된 첫째는 이제 어린이의 수준에 올라섰다. 혼자 씻고 옷도 갈아입고, 알아서 척척 하루의 일정을 진행한다. 정리할 시간이 되면 장난감과 책을 제자리에 가져다주고, 엄마의 기분도 맞출 줄 안다. 그리고 엄마의 일도 기꺼이 도우며 그것에서 성취감까지 얻는 성격이라 그나마 수월하다.



이제 5세가 된 둘째는 아직 반항기가 충만하고 누나 따라쟁이라 귀여운 트러블메이커. 어린이집에서는 그렇게 모범생이고 친구들과 선생님을 돕는다는데... 어쩜 집에만 오면 능글능글 모두 NO를 외치는지. 알다가도 모를 아이. 요 녀석을 잘 컨트롤하는 것이 가족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남편도 연말이라 3일간 휴가로 네 식구가 북적북적 집에서 생활을 오랜만에 했다. 이럴 때 보면 집은 넓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혼자만의 공간도 없이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모두가 시선 안에 들어온다. 점점 세 사람은 즐거운데 나만 일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들에게는 방학이고 휴가이기에 일상을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인데 나는 엄마로 100% 역할 수행을 해야 한다. 고된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낮에 혼자 처리했던 일들을 새벽에 몰아서 해야 하고, 3끼 모두 밥을 차려내야 한다. 고작 1주일, 짧은 방학이기에 지나가는 날짜만 헤아리며 버틴다.



드디어 주말만 지나면 어린이집에 가고 출근을 한다.

야호, 왠지 몸이 가뿐해지는 기분이다.

"자, 이제 방학이 다 끝나가고 있어

2 밤만 더 자면 다시 어린이집에 가는 거야, 알았지?"

"나 어린이집 가기 싫어"

"나는 얼른 가서 친구들 보고 싶어"

"아.. 회사 가기 싫다"



다가오는 월요일에 대한 소감이 각자 다르다. 엄마는 목소리에서도 감추지 못하는 기쁨이 묻어나고, 남편은 쉼을 느끼고 나니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둘째는 일단 싫어부터 외친다. 

"그럼 엄마는 뭐해? 혼자 집에서 놀아?"

첫째가 훅, 질문을 날린다.

논다는 표현이 참 거슬린다.

"엄마? 집에서 일하지. 엄마 노는 사람 아니고 일하는 사람이야.

회사에 나가지 않고 혼자 일하거든. 너희 가고 나면 엄마도 일하느라 바빠"



회사로 나가는 엄마가 아니기에 아이들은 내가 일을 하는지 모른다. 당연하다. 등원 때도 하원 때도 자기들을 마중 나오니까 그냥 집에 혼자 있나 보다.. 여긴다. 일하는 엄마는 친구를 일찍 원에 데려다주는데 자신은 등원 버스 타고 천천히 가니까 엄마가 일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머릿속에도 일하는 사람은 어디론가 바삐 출근을 해야 맞으니까. 



방학이 끝나고 다시 등원하는 날, 한 번 더 이야기를 해줬다.

"엄마들은 집에서 노는 게 아니야. 할 일이 얼마나 많아. 너희 밥도 차려줘, 장도 봐야 해, 씻기고, 청소하고.. 그리고 엄마는 출근을 따로 하지 않는 거지 집에서 일해. 너희 가고 나면 컴퓨터로 일하거든"

집에 있는 엄마는 논다고 생각하는 게 맘이 상하기도 하고, 이 엄마를 노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걸 바로 잡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구차하게 7살에게 다 지나간 이야기를 또다시 하고 있다.





"꼭 아빠처럼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돼. 일의 형태는 많아.

네가 일을 선택하면 되거든. 꼭 취직이 아니어도 된다는 이야기야"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아이의 직업 앞에 나는 때로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고작 6살 아이도 일하러 어딘가로 가야 한다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미 뿌리내려있다. 자신이 눈으로 보는 아빠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내 아이가 20살이 넘었을 때는 아마도 사업, 인플루언서, 스타트업 이런 직업들이 지금보다 더 각광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꼭 취직이라는 형태가 아니어도 거뜬히 일하며 살 수 있고, 나의 바람으로는 그런 업들이 더 비율을 넓혀갔으면 좋겠다. 취업문은 더 좁아질게 분명하니까. 그 구멍을 뚫으려고 아이의 긴 인생을 갈아 넣고 싶지 않다. 그 스펙에 끼어넣으려 자꾸만 작아지기보다 나로 살아가는 업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 길을 만들어가야 하기에 어쩌면 더 고되겠지만, 어디 인생이 편한 적이 있었나.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는 계속 아이에게 출근의 개념과 돈벌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한테 받은 용돈 엄마한테 주면 더 큰 돈으로 만들 수 있어"

"어떻게? 이 돈이 많아진다고??"
"응. 주식에 투자하면 가능하지."



책을 내고 싶다는 아이에게는 출판사가 하는 일을,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아이에게는 돈을 굴리는 방법을 아는만큼 이야기해준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는 일단 주방일을 돕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 그리고 나로 동시에 살아가게 될 딸에게는 더 중요한 엄마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주려고 한다. 

많은 것들을 아이에게 전달해주려면 나부터 아는 것이 다양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엄마의 할 일은 무한히 많다.



아이들이 나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자유롭고 당당하고 그렇게.

이럴 때 내가 늘 하는 말,

"나부터 잘하자"

이 말만 기억하고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집에서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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