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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Jan 19. 2022

이제는 좀 효녀가 된 게 아닐까


어릴 적 자녀들을 비교하는 기준은 늘 성적이었다.  왜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주변에 꼭 있는지.  공부를 잘하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야단을 들은 적도 잔소리를 들은 적도 없지만, 다른 집 아이들의 이야기나 친척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위축이 되곤 했다. 성적이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이들도 있었고 이윽고 서울대, 교대 등 좋은 대학을 어찌나 잘 가는지. 늘 중간을 유지하던 나는 비교군이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는 다른 잣대가 등장했다. 취업. 어느 대학에 진학했는지, 어디에 취직을 했는지 그건 자식농사를 잘 지었는지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었다. 분명 학교에서 일에 귀천이 없다고 얘기했으면서 그건 겉포장일 뿐 잘 나가는 평가를 받는 직장은 몇 개 없었다. 좋은 직장이라는 것은 돈을 많이 벌거나 미래가 보장되어있는 직업이다. 선생님, 공무원, 은행원, 대기업 등 나라의 어느 기관에 속하거나 '사'자를 가진 직업이거나 월급이 많은 그런 몇몇의 직업이 자식 자랑처럼 등장했다.




우리 엄마의 제일 가까운 측근. 큰 이모의 아이들, 나의 친척동생들은 은행원과 선생님이 되었고

또 다른 측근. 엄마 친구 딸은 삼성전자를 다니다가 공무원 6급으로 직장을 갈아탔다.

엄친아. 

그런 사람들은 늘 주변에 포진되어있었다.




말하지 않고 뭐라 하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가 등장할 때마다 나는 그렇고 그런 직업을 가진 내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돈도 그냥 나 혼자 먹고 쓰고 살 만큼 버는 적당한 일을 하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사는 나를 하찮게 여기기도 했다. 순간의 기분이지만 말이다.







"손녀가 아파서 이모 며칠 동안 집 밖을 못 나왔다네. 갇혔대 지금"

"엄마 친구, 오늘 또 서울 갔어. 손자가 방학이라서 볼 사람이 필요하다네. 한동안 있다가 내려오겠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측근들의 소식들.



딸이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가 복직하게 되면 육아에 다른 손이 투입된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니면 도우미 이모. 학원을 다니기에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누군가 손에 맡겨져야 한다. 시댁과 친정이 가까이 있거나 봐주신다고 하면 감사한 일이고,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시터를 알아봐야 한다. 

50대 6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황혼육아가 한창이다. 첫째의 하원 버스에는 총 3명의 아이가 함께 내리는데, 우리 아이 외 2명의 아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각각 데리러 나오신다. 이렇게 부모님이 퇴근하시기 전까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맡아주시는 가정이 생각보다 많다.



엄마가 계속 휴직을 하고 아이를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월급 많은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친정엄마가 나 힘드니까 딸에게 회사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있는 힘껏 뒤를 바주겠다면서 60대 분들이 손녀, 손자를 오늘도 보고 계신다. 할머니도 엄마도 아이 하나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나는 돌아갈 직장도 없고, 돈도 많이 벌 재주가 없기에 전업주부로 소소히 일하면서 아이를 본다. 새벽시간 3시간 그리고 아이 원에 가있는 5시간. 워킹맘처럼 총 8시간을 내 일과 집안일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 생활이 좋다. 만족한다.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지 않는 그런 일이 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고민했고, 아무래도 엄마가 손녀들을 보는 건 체력적 한계가 있다. 나는 손녀 손자 2명을 맡겨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나이 40인 나도 버거울 때가 많은데 오죽할까. 시집와서 30년을 장사하면서 나를 키운 그 시간 뒤에 손자를 또 보게 할 수는 없었다. 

쉴 시간도 있어야지..



나도 돈을 많이 버는 직장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다면 말을 달라 졌을지 모르겠다. 둘 다 조금 크고 나서 내가 직장을 가겠다고 하면 엄마는 아이를 봐주겠다고 했었으니까. 근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요즘 내가 제일 한가하다니까. 다들 손주 본다고 쫓아다니느라 바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면 나는 작아졌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데 요즘 그냥 그런 직장을 다녔던 내가 이제는 좀 효녀가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같고.

그런 말을 듣는데 적당히 벌고 내 아이 내가 보는 내가 어쩐지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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