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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Jan 23. 2022

집안을 확인하고 집을 나서는 엄마

뭐가 그리 바쁜지 요즘은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간다. 새벽 기상을 하고도 눈 깜짝하면 3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기상하고, 챙겨서 원에 보내고 나면 10시. 매일같이 하는 일들을 반복하고 점심을 챙겨 먹으면 아이들 하원 시간, 나의 타임은 끝이 난다. 



가끔 엄마와 낮에 둘이서 점심을 먹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1년이 넘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도 친구분들과의 만남도 줄어버린 엄마는 종종 "오늘 뭐해"하며 딸을 찾곤 했다. 점심이라도 먹자고. 그런데 한번 두 번 내가 일한다고 오늘은 좀 바쁘다고 한 탓인지 언제부턴가 찾지 않는다. 직장도 다니지 않는 내가 일 안 하는 게 의아했겠지만 더 묻지 않고 "알았어"하며 쿨하게 끊어버렸다. 



"엄마 오늘 점심 먹을래?  우리 집으로 와"

"오늘은 한가해? 그래 조금 있다가 갈게"

오늘은 일안하는지, 한가한 지부터 묻는 엄마. 기다렸다는 듯이 오케이를 외쳤다.



엄마와 수다는 줄줄이 비엔나처럼 술술 이어진다. 가끔 나타나는 침묵 타임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함께 하는 시간은 잘 흘러간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한 마디,

"요즘 집 나설 때 집안이 어질러진 게 아닌가 확인하고 나가."

"평소에도 집 깔끔하게 치워두고 살면서 뭘 굳이 또 나가는 길에 확인까지 해, 대충 살자 이제"

"혹시 내가 밖에서 무슨 일 있고 나면.. 집에 와서 사람들이 집 꼴을 이렇게 해놓고 사냐고 할까 봐 그것도 신경 쓰이더라고"



우리 엄마가 소심했나,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편인가.. 그래 지금 요점은 그게 아니다.

나의 마지막이 어떻게 보일까 더 이쁘게 좋게 그런 모습이면 좋겠다는 의미다. 이런 심오한 이야기가 하하호호 속에 껴들다니...



엄마의 말 중에 맞장구쳐 줄 수가 없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죽는 이야기. 

너무 오래 살면 어쩌냐, 요즘 치매가 많다는데 치매는 안 와야 할 텐데, 건강하게 살다가 가야 될 건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가는 이야기가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엄마의 입에서 등장한다. 요즘은 80대 할머니들도 주위에 많은데.. 여즉 60대 중반이라 20년은 더 살 것만 같은데 벌써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걸까.



원래 집을 어질러놓고 살지 못하는 엄마. 매일 집과 화장대 티브이 소소한 가전까지 부지런히 닦고, 설거지할 컵 하나도 쌓아두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씻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 그런 자신이 혹여나 하루 딱 하루 조금 치우지않고 나간 집안의 모습이 자신의 마지막일까 봐 그 모습으로 다른 이들의 기억에 남을까 봐 걱정이 돼서 신발을 신고 나가려다 돌아서서 집안을 훑어보는 장면이 그려져 눈을 꼭 감았다. 눈물이 터질까 봐.



뉴스나 기사에서 보는 사건들. 뜬금없고 터무니없고 준비도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그래 나에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실 나도 그런 일들을 접할 때마다 만약에 내가.. 나에게.. 이런 일이 있다면 언제 나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동안은 그런 생각 때문에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갈 때 더 웃고 안아준 날도 있었다. 마지막 장면이 우리에게는 중요하니까. 싸우거나 얼굴 붉히던 감정이 끝 감정이면 서로에게 너무 슬프니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엄마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정말 나이가 든다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는 단순한 과정일까. 하루하루 잘 살고 있지만 우리가 모두 직면해야 할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그날이 있기에...

이제 막 40인 나의 그날과 60대 중반 우리 엄마의 그날, 상상 속의 그 모습은 어쩌면 다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그리는 건 조금 더 구체적이고 가볍고 그저 일상의 연장선 같을지도. 그리고 그것이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느껴질지도.. 나의 엄마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속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왠지 그런 생각과 대화는 달갑지 않다. 



우리의 그림에는 해피앤딩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느 이별이 해피앤딩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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