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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Feb 02. 2022

명절이 이제야 편해지고 있다

싱글 시절에 명절은 결혼을 언제 하느냐는 그 정도의 간섭, 질문만 피한다면 그냥 쉬는 날에 불과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를 만나거나 누워서 티브이 채널을 주야장천 돌려대며 휴식을 취했었다. 연휴가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회사를 가지 않아도 맘 편히 무작정 쉬는 날. 1년 중에 주말 다음으로 좋은 날이었다. 



제사를 지내는 집이었기에 연휴에 여행을 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게 한 가지 흠이었다. 뭐, 그렇다고 내가 음식을 돕는 일은 없었다. 엄마와 작은 어머니들이 차례음식을 했고 나는 그저 심부름을 잠시 할 뿐, 명절의 한가운데 투입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명절은 일감이 되어버렸다. 공식적으로 시댁을 방문해야 하는 날. 

시댁과 거리가 있는 탓에 자주 찾아뵙지는 않는다. 시부모님의 생신, 명절에는 꼬박 찾아뵙는다. 그 텀이 긴 때는 그 사이에 한 번 정도 가는 편이라 1년에 5,6번 얼굴을 마주한다. 적다면 적은 그 횟수가 돌아올 때마다 나는 긴장모드로 돌입한다. 적어도 1주일 전부터.





친정과는 분위기도 생각도 다른 탓에 여전히 나는 불편함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당연히 모든 사람, 모든 가정은 다르다는 전제를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가족 같지 않은 그 느낌을 느낄 때마다 맥이 풀린다.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나였지만 그럼에도 잘한다보다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의 애를 써서 1년, 2년 신혼시절을 보냈다. 맞지 않는 듯했지만 맞출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말을 아끼는 편을 택했다. 단 한 번도 내 생각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물론 티는 났겠지만 말이다. 



시댁에서는 늘 침묵. 할 말만 하고 살갑지 않은 며느리다. 친정에서도 애교 있는 딸이 아니지만 비슷한 듯 다르게 말도 행동도 나타난다. 그냥, 말이라는 건 많으면 실수를 불러오고 며느리가 말실수를 해서 좋을 일을 1도 없기에 머릿속은 바쁠지언정 입 밖으로 쉽사리 꺼내지 않는다. 우리 그리고 아이들에 대해서 의견이 맞지않을 때조차 꾸욱 한 번 더 그냥 참아버린다. 내가 맞다고 굳이 어른들을 고치려들고 싶지않고 가끔 보는 자리에서 맘 상하고 싶지도 않다. 노력하면 응당 칭찬이 듣고 싶을까 봐 그저 내가 마음이 가는 것도 거두어오는, 지극히 현실적이려고 애쓰는 며느리로 살고 있다. 내 마음 편한 그만큼을 여전히 양을 재고 있다. 평생 가고 오는 그 마음의 무게가 같지않을 걸 알면서도 덜어내고 덜어낸다. 



다른 점, 아니라고 생각하는 점을 조목조목 따져 말할 관계가 맞을까. 그래도 되는 사이일까. 그 자체로 서로 간의 선을 넘는 건 아닐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나는 없는 걸까. 아니면 남편인 아들이 나 대신 따져주길 바라는 걸까. 시부모님들이 그냥 알아봐 주시길 바라는 걸까.



넌 대체 뭐가 불만이고 뭘 바라니. 

수도 없이 물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싶을 때가 많지만 그저 나는, 별 탈 없이 지내는 사이이고 싶다. 딱 그만큼만 바란다.



9년 만에 명절이 맘 편했다. 그 사이 실망과 고마움, 섭섭함 등 여러 가지 감정을 서로 느꼈지만 조금씩 정리가 되고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산뜻하게 설 당일 아침 절을 하고 시댁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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