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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Mar 04. 2022

시작하길 잘했다

"안녕하세요"

한참 더운 여름, 버스를 환승하며 들어간 그림을 그리는 공간. 새하얀 색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깔끔하고 심플하고 샤랄라 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캔들을 만들어 파는 곳이기도 하고 캘리그래피, 수채화, 아크릴화, 오일파스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집에서 아이나 보는 나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공간, 그래서 더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림을 그려볼까 싶은 마음에 주변 미술학원, 아뜰리에, 스튜디오 등 다양한 곳을 찾아봤다. 그중에 마음이 끌리는 한 곳을 골라놓고는 몇 달 동안 인스타를 들어갔다 나왔다...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게 쉽지 않았다. 굳이 지금 그림 그리는 일이 나에게 필요할까? 아이들 어린이집도 코로나로 언제 갑자기 쉴지 모르는데, 그림 그리러 가는 날 딱 걸리면... 무슨 발동이 걸렸는지 어느 날 등록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설렘을 가득 안고 그곳에 들어선 첫날.

선생님이 보여준 그림들 중에 내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랐다. 보라색으로 된 하늘에 구름이 뭉개 뭉개 모여있는 장면. 하늘과 구름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끌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그리는 그림이라 어색하고 붓질조차 얌전해서 하나를 완성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작은 캔버스였는데도 2시간이 넘게 흘러있었고, 그 작품은 당연히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담아둔 나의 마음을 꺼낸 시작이었으니까.



일상과 내 생각을 올리는 인스타그램에 그날 그린 그림을 올렸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림이라는 걸 내 하루에 넣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좋았다. 



"이 그림 사고 싶어요!!"

이 댓글을 한참 바라봤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살게 될 거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누군가에게 내 그림을 선물하고 판매한다는 생각도 감히 해보지 못했는데, 불쑥 나온 이 댓글은 뭘까. 운명인가.

댓글을 받고 하루 종일 이걸 선물하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첫 그림이라 나에게도 의미가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이 그림이 연결되었다면 나에게도 굉장한 일이다.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그분에게 연락을 해서 바로 택배를 보냈다.



마치 누군가 정해놓은 순서처럼...

나의 첫 그림은 첫 선물로 연결되었다.




지금은 그림을 배우러 다니고 있지 않지만 아이패드로 매일 혼자 그리고 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몰라서 유튜브나 블로그, 책을 찾아보며 하나씩 사용법을 알아가고 점점 나다운 그림이 발현되고 있다. 



책이 나왔을 때 의도하지 않은 그냥 내 생각을 늘어놓았더니 다들 나와 어울린다고 이야기했다. 감정이 항상 앞서는 나는 그런 내 모습을 싫어했었는데 좋게 봐주시는 분들 덕분에 그걸 장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글이 참 한결같이 나답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림 또한 나와 많이 닮아있다. 사실 나는 이렇게 해야지 하며 미리 구도를 잡을 수 없는 초보이기에 계획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경험과 지식이 제로인 상황에서는 다양하게 그려보는 부지런함을 떠는 수밖에. 이걸 표현하고 싶은 게 아닌데..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내 생각과 더 가까운 그림이 그려질 때면 해냈다는 뿌듯함이 크게 밀려온다.



글에 그림을 얹어 조금씩 더 나라는 사람을 알아간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글과 그림을 보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이다.

짧은 댓글 안에 사랑이 담겨있고, 누르고 간 하트 안에 진심이 묻어있다. 그것들이 느껴질 때면 내가 잘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이 방향이 맞다는 의미 같아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용기 내서 시작하길 잘했다,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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