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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May 06. 2022

마흔, 아이가 지어준 이름이 생겼다

새로운 부캐, 햇살

"햇살, 안녕~채아 데리러 왔어?"

"응, 오늘 소풍 잘 갔다 왔어?! 재미있었어??"



아이의 하원 시간. 내 아이가 아닌 제일 먼저 보이는 아이와 인사를 나눈다. 햇살이라는 이름으로...


아이 등 하원 시간에 내 이름은 햇살이다. 진짜 이름은 어디 간데없고 닉네임, 별명으로 불리는 새로운 이곳. 아이들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이 마흔에 새로운 이름이 하나 생겼다, 햇살.




"여기는 별명으로 서로 불러요. 부모님들끼리도 아이들도 어른을 별명으로 부르면서 이야기 나누거든요.

아빠 엄마 모두 별명을 지어오세요~"



그렇다, 뭐든 평범하게 흘러가는 것이 없는 이곳.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으니 누구 엄마보다 별명으로 부르면 친근하게 금방 친해지기도 하겠다 싶었다. 보통 어린이집에서는 채아 엄마, 은우 엄마로 불리는데... 또 하나의 숙제가 생겼다.



"엄마 아빠 별명을 지어야 한대, 뭘로 하면 좋을지 같이 생각해볼까?

너희가 하나씩 지어주면 좋겠는데~"

"나는 엄마 지어줄게. 음.. 햇살 어때?."

"그럼 나는 아빠 이름을.. 윌크 어때? 브레드 이발소에 나오는 윌크"

"햇살? 윌크?"



별명을 짓는 일은 나와 거리가 멀다. 별 특징이 없기도 하고 네이밍에 센스가 없다. 학창 시절에도 있는 듯 없는 듯해서 특별한 별명 없이 지냈고,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닉네임을 짓기가 귀찮아 그냥 내 이름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나다. 남편도 그다지 재주가 없으니... 남은 건 아이들. 너희로 인해 일어난 일이니 너희가 책임져달라는 생각도 들어서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 별명을 지어달라고 했다.



엄마는 햇살.

아빠는 윌크.

엄마인 나는 몹시 마음에 들어 했고, 아빠는 조금 불만이 있었지만 둘째의 완강한 고집에 할 수 없이 이름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왜 아이들이 어른을 별명으로 부르고, 높임말이 아닌 반말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곳 아이들은 친구의 부모, 선생님 등 함께 하는 어른들에게 모두 반말로 이야기를 나눈다. 버릇없이 대화하지는 않지만 일단 말을 높이지 않기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순간 흠칫 놀랐다. 새로운 공간이라 조금 하며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섰는데, 한 아이가 처음 보는 어른인 나를 어려워하지도 않고 직진으로 달려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반말로. 



"아이들이 어른을 어려워하지 않고 서로 같은 눈높이로 대화하는 게 중요해요. 눈치 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잘되려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필요해요. 그걸 만들어주기 위해서 말을 높이지 않고 대화합니다" (이건 제가 해석한 말들이에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걸 받아 적어 둔 건 아니랍니다)



우리는 부모, 어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다. 유아시절에는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말이다. 어릴 때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만나는 어른은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 친구의 엄마 아빠 이 정도이다. 그래서 부모와 그 어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느냐에 따라 아이의 생각과 행동이 결정된다. 이 절대적인 시기는 아이가 커나가는 제일 중요한 바닥을 다지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하나 눈과 마음에 아이들을 다 담고 있는 단언컨대 제일 중요한 시기이다. 



"엄마 말 들어야지!"

"왜 이렇게 어른 말을 안 듣니!"

"하지 말라는 건 좀 하지 마!"

어른의 시선에서 모두 판단하고, 단정 짓고... 아이는 나의 생각을 말할 틈도 없이 모든 것이 결정된다. 어른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아이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렇게 클 확률이 크다. 내 생각이 무엇인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원하는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채.. 성취감이라는 단어를 직접 느끼지도 못한 채..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내가 자라던 80년대와 지금이 지독하게도 닮았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눌러서 키운 아이가 갑자기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똑바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이가 원하는 것을 잘 말할 수 있게 키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될 수 없고, 태어나서부터 생활화되어있어야 사춘기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가능한 일이다.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 



높이는 말 자체에 서열이 정해진다. 그런 의미로 아이들은 만나는 어른에게 별명을 부르며 반말을 한다. 그냥 나와 같은 사람의 관계로 말이다. 그렇게 대화하면 나까지도 맑아지고 환해지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나는 햇살로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왔다.


"햇살 갈게, 오늘도 맘껏 놀아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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