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Jul 12. 2022

엄마도 며느리 나도 며느리

오랜만에 할머니 제사에 다녀왔다. 아빠가 장남이라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가족과 함께 사셨다. 그래서 한동안은 나도 당연히 제사에 참여했고, 내가 직접 음식을 준비하진 않아도 상을 펴고 음식을 나르는 심부름은 내 담당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자연스레 친정집 제사에 가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일을 돕는 손 하나(나)가 느는 것과 동시에 집을 어지럽히고 정신없게 만드는 두 명이 늘어나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사람도 많고 챙길 것도 많아서 번잡스러운 날인데 나까지 아이들을 달고 가는 건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나는 음식을 할 사람도 아니니 득 보다 실이 많은 상황을 만드느니 차라리 가지 않는 게 나았다.



사실 제사에 가지 않는 진짜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우리 엄마, 그러니까 제사를 담당하는 우리 엄마의 며느리로서 하루를 보는 게 마음이 불편하다. 잠시 머물러도 부정적인 감정이 막 휘몰아친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 때는 내가 어려서 몰랐던 것들이 결혼한 지금은 눈에 너무나 잘 보인다. 40년 전에 며느리는 가족도 가족도 아닌 포지션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 않나.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분위기는 그대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참 시간이 흘렀어도 며느리는 며느리/ 딸은 딸. 바뀔 수 없는 역할이라는 건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 제사를 왜 며느리인 우리 엄마만 하루 종일 준비를 하며 지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제 모두 나이가 들어 우리 엄마는 60대 중반, 고모들은 50~70대.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 고모들도 있는데 말이다.



"왜 맨날 엄마만 준비를 하는 거야, 음식도 나눠서 하자고 해. 힘들어서 못한다고"

나의 투정에 매번 엄마는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며느리여서... 이 더운 여름에 장 보느라 땀이 뻘뻘, 음식 하느라 또 하루 내내 고생하는 이 일이 꼭 며느리만의 것이어야 하는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요새 애들은-이라는 말로 나에게 뭐라고 해도 나는 엄마가 며느리보다 내 엄마로 보인다. 시집을 온다는 말도 참 맘에 안 드는데 말이다.



"그렇게 힘들어 보이면 네가 좀 도와주면 되지"

생각해보면 맞다. 엄마가 힘들면 그 딸인 내가 도와주면 된다. 그런데 나도 그런 엄마의 일을 조금 덜어줄 생각을 못한다. 더운데 같이 장을 봐주러 간다거나 아이들 보내고 바로 친정으로 달려가 제사음식을 한다거나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개구리 심보. 왜 딸들은 안 하는데 손녀인 내가 굳이 그걸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더 짜증이 난다. 엄마를 도와준다는 마음만으로 하면 되는데.. 손녀인 내가 설거지하고 부엌을 들락거리는 동안 딸들은 티브이를 보며 앉아있는지, 수다를 떨고 있는지 배알이 꼴린다.






내 일도 아니고 제3자의 입장에서 어제는 한참 짜증이 끓었다. 오랫동안 보아온 장면인데도 무뎌지지않는다. 그 감정이 오늘까지도 이어져온다. 자주 볼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게 하는 관계는 피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쪽을 택한다. 굳이 마주해야 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연락을 먼저 하지 않거나 말을 길게 하지 않거나 그렇게 나의 기분을 나빠지게  만드는 기회를 차단하려 애쓴다. 



그런데 그게 가족이라면, 일 년에 최소 한 두 번 만나야 하는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다. 봐도 못 본 척 그리고 한 귀로 듣고 흘리기 신공을 부려야 하는데 아직 마음이 좁은 나는 들어오는 정보를 그대로 흡수한다. 친정도 시댁도 그런 순간들이 당연히 있지만 며느리라는 이름은 너무 힘이 없다. 나도 며느리 엄마도 며느리. 우리 딸도 며느리가 되겠지?



나를 중심으로 본다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가족과도 거리를 둘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작댈 때마다 질문을 던졌다. 질문에 대한 답이 yes여도 내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굳게 인정해도 결국 행동까지 연결시 키지지 못하는 이유는, 나쁘다고 욕할까 봐- 못 댔다고 흉볼까 봐-우리 부모님이 나를 잘못 키웠다고 생각할까 봐-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눈에 차고 싶은 이상한 심리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족은 참 어렵다. 가까운 사이가 맞지만 가깝고 싶지 않을 때가 많고, 내 맘대로 말을 내뱉기에는 너무 가깝고. 



내년 제사에는 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정신이 없으니 우리는 조금 더 크면 참여하겠다고 둘러대면 되니까, 아이들 핑계로 당분간 거리를 둬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