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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Oct 11. 2022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알고 보면 제일 중요한 일을 해요

전시회를 끝내고 나니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모두 사라졌다. 한마디로 자기 계발의 에너지가 방전되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작업을 해서 몸이 지친 것도 아니고, 내 그림을 걸어 두고 나서 맞이할 사람들의 반응에 마음을 졸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나의 큰 점을 찍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일까 싶기도 하지만 마음은 전혀 조급하지 않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가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잠도 자고, 오늘 뭘 해 먹을까 고민하며 매일 마트에 가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요즘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이 말을 내뱉고 나니 어쩐지 이상했다. 분명 어제도 오늘도 한가한 듯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대체 뭘 안 하고 지내고 있는 걸까. 내가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다.



조용한 시간 가만히 앉아 어제와 오늘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청소도 반찬도 살림에 열심히다. 음-내 할 일(글 쓰고 모임 톡방 이끌고 강의 준비하고)들에 치여 조금은 나 몰라라 했던 집안일들. 매주 조금은 버거웠던 강의도 끝나고 첫 전시회도 끝난 10월 초.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족을 챙기는 일에 잠시 소원했던 것이 마음에 짐이었는지 한가해진 시간에 아이들과 가족, 내 몸을 챙기는 일이 파고들어 하루를 가득 채웠다.



열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매일 필라테스를 갔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삶으려 내놓은 흰 옷더미도 처리했고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하루를 보냈다. 날이 추워져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돼서 아이들 면역력을 위해 잘 먹이고 싶었다. 입이 짧은 둘째가 뭘 해주면 맛있다며 밥을 먹을까 고민했다. 표고버섯을 넣어 밥도 하고, 표고를 다져 야채전을 했다. 어제는 마늘밥도 하고 하지 않았던 메뉴에 자꾸 손을 댄다. 



그렇다면 하지 않은 일은 무엇일까. 매일같이 쓰던 글을 쓰지 않았고, 인스타에 사진도 블로그에 글도 올리지 않았다. 새벽 기상도 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신생아처럼 잤다. 매일 아침 하나의 루틴인 오늘 뭘 할지 생각하며 끄적이던 다이어리도 열지 않았다. 어제는 운영하던 모임을 마무리짓고, 이제 다음 기수는 운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열흘 동안 내가 하지 않었던 일들은 사실 몇 년 동안 매일같이 하던 일이다. 하루는 괜찮아도 2-3일만 업로드하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마냥(어쩌면 그것들도 나에게는 일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니까) 마음이 무거워서 뭐라도 찍고 순간의 생각을 올리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들을 하지 않고도 불안하지 않았다.



나를 채우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행위들을 멈추고도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나보다 엄마의 이름에 자리를 내어줘도 마음이 쫓기지 않는다. 그저 하고 싶을 때가 오겠거니- 하고 싶은 일이 생기겠거니-나를 볶지 않고 그냥 둔다. 나를 여유롭게 바라봐주는 마음, 이것이 나에게 필요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제일 중요한 일들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티 나지 않지만 아이들을 챙기고 우리 가족의 밥을 하고-에너지를 채워 다시 내가 하고싶은 일이 왔을 때 또다시 달리기 시작할 것이다. 천천히 가는 것까지 즐길 수 있는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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