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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Sep 25. 2022

어느 날 갑자기

지금을 선택하기로 해요

다음 주가 친정엄마 생신이라 주말 미리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매번 집밥을 차려주는 엄마가 생일날은 다른 사람이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가족만 사용할 수 있는 룸이 있는 식당을 검색했다. 집에서 너무 멀지 않고 자주 먹는 고기 외에 맛있고 몸에 좋은 메뉴, 복잡한 도심보다 약간 한적한 곳. 틈틈이 찾은 끝에 산속에 위치한 오리고깃집을 발견했다. 그곳으로 토요일 12시 예약을 하고 가족들에게 알렸다.



며칠 뒤 금요일 저녁,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점심 취소해야겠어. 아니다, 나는 못 가니까 너희끼리 가서 먹어-"

"왜? 무슨 일이 있어? 아빠는 왜 못가?"

"지금 병원을 가봐야 할 거 같아서 그래"

저녁을 먹다가 받은 전화였는데 대화 내용이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들고 있던 숟가락도 놓고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무슨 일인지, 갑자기 이 시간에 왜 병원을 가는지, 사고가 난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이 시간은 응급실을 가야 하는데 그렇게 급박한 일인지... 어두운 시간 갑작스럽고 긴박해 보이는 이 전화에서 아빠는 목소리가 차분했다. 



폐기흉.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릴 때 아빠가 입원을 길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폐가 안 좋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30년 전쯤에 겪은 일이라 내 기억은 희미했다. 오전부터 가슴이 답답해서 조금 전에 병원을 갔고 거기서 예전 그 병명을 이야기하며 응급실로 바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숨이 넘어가야 가는 곳이 응급실 아니었던가. 너무 멀쩡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얼마나 급하길래 응급실을 가라는 건지-

그때부터 나의 시간이 멈춰버렸다.



-

1시간쯤 지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당연히 진료가 진행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와는 반대로 길가에 서서 병원을 찾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로 병실이 부족해서 처음 간 병원에서는 아예 입장도 하지 못했고, 받아줄 곳이 있는지 대학병원에 전화를 돌리는 중이라고.. 두 분이 도로 한편에 서서 이 밤에 핸드폰 사용을 나처럼 잘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또 한 번 내려앉는다. 급하게 나도 대학병원에 전화를 돌려 상황을 설명했고, 지금 오라는 곳을 찾았다.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한데 자꾸 전화를 걸 수도 없고,  아빠가 아픈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일단 가보자며 아이들 옷을 갈아입혔고, 얼굴을 볼 수 없을 걸 알면서도 가까이 있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밤 9시 집을 나섰다.



선선한 가을밤, 어쩐지 추웠고 병원 주변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밖에 나왔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두 분을 기다리느라 병원 밖 의자에 앉아 과자랑 음료수를 먹으니 더욱 행복해했다. 응급실이라는 게 뚝딱 진료를 봐주지 않는 데다가 요즘은 또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하기에 시간이 배로 걸리는 듯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결국 우리는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자정이 다돼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진단 결과 폐기흉이 맞고 폐에 호스를 꽂았다고 했다. 경과에 따라 최대 1주일 동안 입원을 해야 한다고.

이 정도이길 정말 다행이다.



-

아빠는 워낙 건강한 사람이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40년 이상 매주 일요일 조기축구를 나가신다. 그게 인생의 재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고 정말 비바람이 치는 날이 아닌 한 매주 공을 차신다. 그 열정이면 축구선수가 되고도 남았겠다고 가족들이 이야기할 만 틈 그 취미를 사랑하신다. 덕분에 연세보다 젊어 보이기도 하고 감기조차 하지 않는 분이시다.



건강한 사람, 건강을 자부하는 사람들이 한 번에 크게 아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빠가 떠오른다. 그래서 섬뜩해진다. 이제 66세. 나이를 생각해보니 이제 우리 아빠도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아픈 사람도 떠나는 사람도 많은 요즘,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가만히 헤아려보았다. 얼마쯤 남았을까?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가장 슬프고 간절하고, 무엇이 제일 중요한 지 알게 해 주는 단어다. 아프거나 사고가 발생하는 건 정말 예상할 수 없기에 1시간 뒤, 내일 아니 1초 뒤에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이런 생각을 하면 더욱 '지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지금 이 시간이 생애 마지막인 사람도 실제로..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누구와 무얼 하며 지내는 것이 나의 행복을 선택하는 일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가을밤 서늘한 바람을 나는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만하면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이 말을 천 번쯤 내뱉은 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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