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아이, 그것도 함께 채운다
아이를 낳고 '내면 아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어른이 되었지만 내 안에 머물러있는 작은 아이.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 외롭고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상태의 어린아이. 그 말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개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그런 존재를 다 품고 있다'라고 얘기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내용이 담긴 책에 반감이 들었다. 그건 불우한 환경에서나 일어나는 일 혹은 안 좋은 일을 크게 겪은 사람에게나 남아있는 트라우마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했다.
육아서를 읽고 육아 채널에 나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다 보니 이제 '내면 아이'라는 단어는 익숙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어릴 때 어떤 부분이 부족했고 덜 채워졌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과거와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했고, 좋은 면도 아닌 좋지 않은 것들을 꺼내야 하는 일이 불편했다. 이걸 받아들이기까지 내가 넘어야 할 산이 있었으니.. 그건 나의 내면 아이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 같았고, 부모님이 주신 사랑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나를 눌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로 나는 못된 딸이 아닐까-이런 생각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에게 잘해주려고 애쓰지만 순간마다 아이는 "엄마 미워"를 외쳤다. 너의 말도 눈 맞추며 들었고 너의 요구도 수용할 수 있는 만큼 받아들였고- 이만하면 나는 애쓰고 잘하고 있다고 어깨가 올라갈 때쯤 아이들은 꼭 엄마를 눌러버렸다.
"엄마 내 말은 안 들어주고. 엄마는 맨날 안된다고만 해"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도 다르게 생각할 수가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분명 나는 안된다고 한 것보다 된다고 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여겼는데, 아이는 엄마가 안된다고 한 것만 기억했다. 동생보다 첫째 편을 조금 더 들어준 것 같은데, 아이는 나만 미워한다고 이야기했다. 언제나 생각은 주체적이고 이기적이기에 나 중심으로 돌아갔다. 너는 너, 나는 나. 오롯이 내 중심으로 생각한 끝은 결국 나에게 채워지지 않은 그 마음이 크게 발산되어버렸다.
기억이라는 건 늘 이렇게 주관적이다.
그러니..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받고 싶었지만 채워지지 못한 부분을 가진 내면 아이가 있다고 해도 그건 우리 부모님이 나쁘고 잘못한 부모가 아니다. 모든 부분을 완벽히 커버할 수 없는 게 사람이기에 부모라고 해도 놓치는 부분이 있고, 아무리 내 아이지만 타인이기에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르고 흘러간다. 또 사느라 바빠 인지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칭찬을 받고 싶고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나였지만 어쩌면 맏이로서 살아가는 일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알아서 내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것이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해내면서도 칭찬은 받고 싶었던 어린아이. 그게 나에게 남아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내면 아이가 있다고 해서 우리 부모님이 채워주지 못했으니 잘못했다가 아니라 나는 이런 부분이 부족했었구나 하면서 우리 아이에게는 이런 마음이 남아있지 않게 내가 알아봐 주고, 이제는 커버린 나에게도 스스로 칭찬을 많이 해주며 보듬어주면 된다.
요즘 지나영 교수님의 유튜브 채널을 즐겨보고 있다. 아이 그리고 사람의 존재에 대한 무한한 사랑, 응원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매일같이 보고 있다. '맞아, 이런 이야기를 내가 듣고 싶었고 저런 느낌을 부모에게 받고 싶었어' 육아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열변을 토하는 교수님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힐링이 된다. 20초 허그를 추천하시는데 상상만으로도 아이와 내가 행복해지는 모습이 떠올라 바로 우리 가족에게 적용을 했다.
"엄마는 너희를 정말 사랑해. 엄마한테 와주서 너무 고맙고 오늘도 애쓰며 원에서 생활하느라 수고 많았어. 무얼 하든 늘 응원하고 엄마는 너희와 함께라 행복해. 오늘도 너의 하루를 잘 보내고 와-잘 놀고 오후에 다시 만나자, 사랑해"
"엄마 나도 엄마한테 고마워. 항상 응원해"
우리 부모님이 마음은 있지만 내뱉지 못해 내가 듣지 못한 '사랑한다, 응원한다, 고맙다' 이런 말들을 이제 내 아이들이 나에게 해준다. 서로 존재를 사랑해주고 애쓰는 걸 알아주고 행복함을 나눌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까.
엄마 아빠도 장녀, 장남으로 자라며 나와 같은 모습이 마음 안에 남아있다. 뭐든 스스로 해야 했고 책임져야 했고, 80년대생이 가진 첫째의 무게보다 50년대는 훨씬 더 무겁고 깊었으리라. 그러니 그분들도 부모로부터 잘한다, 고맙다 이런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 당연히 첫째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짐만 있을 뿐. 내 아이가 이런 부분을 나에게 채워주듯 우리 부모님에게도 내가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 안에서 커지는 사랑과 편안함을 슬 우리 부모님에게 흘려보내는 중이다.
"엄마 고마워. 엄마 사랑해"
"아빠 고마워요"
아직 얼굴을 보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카톡으로 먼저 말이다.
"엄마, 오늘은 왜 안아줘?"
오늘 아침 늦잠을 잔 탓에 안아주는 일을 건너뛰고 하루를 시작했더니 아이들이 동시에 불평을 했다. 엄마가 안고 사랑을 표현해주는 일이 아이들에게 이미 중독되었나 보다. 내가 잊어도 아이들이 먼저 챙기는 애정표현. 이제 우리 가족의 문화로 자리 잡으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