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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Nov 01. 2022

3년 만에 다시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3년 전, 감사일기를 쓴 적이 있다. 그 당시 아이들은 4살, 2살이었고 둘째는 아직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채 나와 함께 하루 종일 지내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원에 가는 게 어디냐만은 그럼에도 남은 둘째 그리고 3시 반이면 오는 첫째.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즐겁지 않은 감정이 많이 생겼다.



'감사일기를 쓰면 현재의 감정들이 풍족해진다는데 나도 한 번 써볼까?'

속으로 진짜 그게 될까, 믿거나 말거나 약간의 의심을 했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니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작고 큰 행복 조각들을 감사일기를 쓰면 나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내 하루가 조금 풍성했으면 좋겠다- '이걸 꼭 해야겠어!' 이런 다짐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순간이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다면 감사한 것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감사일기를 쓸 공책을 찾아 책장과 책상을 뒤져봤지만 깔끔하고 깨끗한 새 노트는 없었고, 몇 장 끄적이다 멈춘 노트들만 가득했다. 새 마음, 새 다짐을 나타내는 이쁜 노트에 첫 줄을 쓰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노트 하나 사러 아이를 안고 나가기는 싫어 쓰다만 노트를 아무거나 집어 들고 빈 페이지를 열었다. 날짜를 쓰고 지금 떠오르는 감사함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음- 뭐가 감사하지.. 도대체.



아이를 낮잠 재워놓고 감사노트를 펴 곰곰이 생각한 끝에 발견한 1,2개 쓰다 보면 아이가 깼다. 

모두가 자는 밤 조용히 혼자 감사노트를 열고 오늘의 날짜만 쓰고 졸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하루 이틀.. 감사일기를 펴는 날이 띄엄띄엄 그러다 잊혔다. 이걸 쓰는 동안 행복은커녕 나의 감사를 찾는 에너지가 더 소모되어 일처럼 느껴졌다. 감사일기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미션이라며 여기 쓸거리를 찾는 일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지었다. 감사한 일을 찾는 게 이렇게 어려운 지 몰랐다. 





감사는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보인다.




10월 중순, 3년 만에 다시 감사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그러고 나니 의식도 생각도 만나는 사람도 변했다. 요즘은 의식하지 않아도 수시로 감사하다는 생각과 말을 자주 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냥 고맙고 감사한 일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이제야 그것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을 글로 옮겨보자며 시작한 일이 감사일기 쓰기다.



쓰는 시간은 정해두지 않았고(그래서 가끔 빼먹는 날이 벌써 발생하고 있지만)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난 후, 일을 하려 책상에 앉자마자, 자기 전 하루가 끝나는 마지막 행동으로, 지나가다가 감사노트가 보이면..'꼭 매일 써야지'하며 나를 괴롭히지 않고 생각나는 만큼 쓰고 있다. 감사한 일을 한 두 가지도 쓰기 어려워서 시험문제 풀 듯 괴로워했는데 이제는 10개는 거뜬히 쓴다. 스스로의 하루를 잘 지내는 가족에게 감사하고 건강히 마주할 수 있어서 고맙고. 건강히 지내고 계시는 부모님에게도 감사하다. 이 좋은 가을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삶에는 좋은 것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진리다. 그렇다고 지금은 걱정거리가 없고 현생에 치이지않느냐-그건 결코 아니다. 현재 오늘에도 고민과 두려운 일, 잘 풀리지 않는 일은 존재한다. 어쩌면 그때보다 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많아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전보다 좋은 것들이 더 많이 느껴진다. 

그거면 되었다. 

3년 전보다 내가 마음에 여유가 있어졌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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